▲ 김민배 (인하대 법대학장·객원논설위원)
로또텔, 부동산 투기의 새로운 대명사로 등재된 인천송도의 오피스텔이다. 그리고 국세청이 계약자들에 대해 불법거래와 자금출처 등을 조사하면서 다시 유명해졌다. 덕분에 당첨되면 새 직장을 찾고 싶다던 사람, 장사 밑천을 만들어 보겠다던 시민, 빚이나 갚겠다던 사람까지도 서슬퍼런 세금완장 앞에 오돌오돌 떠는 처지가 됐다. 아마도 청약금만을 갖고 뛰어들었을 그들이기에 당첨권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판이다. 당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량 투기꾼으로 매도당하고 조사를 받아야 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이 3일 밤낮 동안 칼바람의 매립지 위에 서 있게 만들었던가. 사람들은 돈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수라장이 된 접수대 건너의 황량한 갈대밭에 불을 지른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래가 없는 그들의 꿈이 분노가 된 것이다. 그 현장에 모자를 꾹 눌러 쓴 내 친구와 두꺼운 외투로 무장했던 이웃 주민도 있었다. 밤샘한다던 친구에게 커피라도 전해 줄 요량으로 전화했지만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 접수로 바뀌면서 밤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당첨이라도 돼야 먹고 살 수 있다던 목소리는 쉬어 버렸다. 그리고 언론과 정부로부터 투기꾼으로 몰매 맞았다.

왜 내 친구는 5천대 1의 행운을 기다리며 줄을 서야 했던가. 올해는 2007년. 우리들의 대학입학 30주년이 되는 해다. 무슨 기념행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전화를 했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은 직장에서 전화를 받지 못한다. 한때는 대기업의 사원이었지만 그들도 사오정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트라고 칭송받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친구들이다. 그러나 황망하게 직장을 떠난 친구들이 걸어가는 길은 비슷했다. 음식점 개업, 다단계 판매, 기획부동산 코스가 그것이다. 물론 업종을 바꿀 때마다 빚은 늘어갔다. 그럴수록 한탕에 대한 갈망 또한 절실했다. 한탕이 절실할수록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불신도 커갔다.

친구들의 현재 상황이 정부나 언론이 말하는 실업률 몇%로 잡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과학을 가장한 실업 데이터에 대해 그들은 관심이 없다. 세상은 투기꾼에 무법자로 몰아가지만 연금도 저축도 없는 그가 선택할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면 3일이 아니라 30일이라도 밤샘을 했을 것이다. 친구가 묻는다. "왜 한탕이 나쁜가." 그는 8년전 외국으로 떠난 친구를 생각했다고 했다. IMF의 이름으로 '잘린' 후 이꼴 저꼴 보기 싫다며 떠나던 친구를 눈물로 소주로 말리던 그였다. 그가 떠난 친구를 부러워 한다는 것은 이제 그도 조국에 대한 배신을 꿈꾸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메일을 보내도 국제전화를 해도 답장이 없다는 소식을 나는 전하지 못했다. 친구의 아내말로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일을 갔다고 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배신을 꿈꾸는 친구는 한탕을 향해 뛰고 있다. 작년 2월에 2억원이었던 50평짜리 '조개딱지'가 11월에 7억원이 되었고, 그것이 로또텔의 바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도 송도 11공구가 매립되면 뱃값 보상과 제 2의 조개딱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헌배를 사러 다닐 것이다. 그리고 장뇌삼씨를 들고, 대추나무를 들고 산으로 들로 달릴 것이다. 이제 친구는 국세청의 칼도 투기꾼이라는 낙인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고. 대기업과 사회의 엘리트라며 부려먹던 그를 쫓아 낸뒤 아니 잘린 뒤에야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해줄 아무것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실업자의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 갈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나는 친구의 한탕주의도 분노하는 배신의 꿈도 말리지 못하고 있다.

/김 민 배(인하대 법대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