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우리는 전자혁명의 산물인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 MP3 등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TV는 80년 전, 컴퓨터는 60년 전, 반도체는 40년 전, PC는 30년 전, MP3와 웹은 15년 전, 한 세기가 안 되는 발명의 역사를 통해 문명의 이기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우리 생활 속에서 첨단기기들은 이제 당연한 듯 빠르게 수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놀라운 과학기술 혁명을 가능하게 한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막상 소홀하기만 하다. 기초과학은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로,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창의적 과학기술의 원천으로, 기초과학 없이 선진 과학강국이 될 수 없고,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확대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적 연구 지원이 주로 응용개발 및 목적 지향적 중대형 규모의 연구로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 그 결과 개인의 창의성이 힘을 발휘하는 소규모 기초 연구가 소외되고 수학·물리· 화학 등 순수 기초과학 분야의 다수 연구자들이 점차 고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중 대학에서의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개인·소규모 기초연구 예산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대학의 경우 연구 인력의 70% 이상이 집중해 있고, 기초 연구예산의 투자대비 연구효율이 월등하게 높다.
현재 대학에 소속된 기초과학 연구인력 중 고작 4.4%만이 개인 연구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신진연구자와 지방에 소재한 연구자의 경우 진입 장벽과 높은 경쟁률 그리고 지원의 불연속성 때문에 연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기초연구비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고등교육의 국가경쟁력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에서의 기초연구 인력 지원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학강국인 캐나다의 경우 전체 교수급 연구 인력의 4분의 3 이상에 대해 기초연구비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경제력 대비 과학의 질적 수준은 세계에서 평균 이하에 머물러 있다. 고등교육의 글로벌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가까운 미래에 과학기술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기초연구 지원도 선진국형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기초과학 지원을 통해 연구효율이 높은 대학의 잠재 역량을 극대화하고, 기초과학 기반연구 인력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 신청 후 지원이라는 수동적 방식을 탈피하여 과감하고 능동적인 선제 투자로 기초 연구 잠재역량을 대규모로 발굴 육성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은 비록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기초과학의 연구자들이 창출하는 창의적인 발명과 발견이 언젠가 미래 사회의 우리 생활 속으로 부메랑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학, 물리, 화학의 3대 학회가 '기초과학 학회협의체'를 새로 결성하고, 큰 위기에 빠진 '풀뿌리 기초과학'을 살리는 데 국가적인 힘을 결집하고자 나섰다. 기초과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과감한 국가 지원을 통해 기초과학의 기반 연구인력망이 구축되면 창의적 기초연구 생태계의 근간이자 선진과학강국으로 가는 성장 엔진이 될 것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가속화되는 글로벌 무한 경쟁의 격랑을 헤쳐 나갈 미래 세대를 위한 소중한 선물임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김 승 환(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