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법에 대한 인식과 의식수준을 알고 나면 법의 경시풍조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확인할 수 있다. 법무부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 사람 4명중 1명은 법을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10명중 9명은 권력이나 돈이 법보다 영향력이 있고, 62%는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95%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이나 돈있는 사람은 법을 어겨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데 있다. 공정해야 할 법이, 법집행 과정에서 '법치'가 아닌 '인치'가 폭넓게 작동하고 있다는 말로, 법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
우리 주변을 살펴봐도 실상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해 줄 영향력있는 '윗선'이 없나 우선 살피는 것이 순서로 돼 있다. 이는 일반 시민뿐아니라 위정자도 경우는 다를지 모르나 현상은 같을 것이다. 공정한 규칙으로 해결하려는 노력과 그 결과에 승복하기 보다는, '실력자'를 찾아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한국의 법은 비현실적이다' '법을 지키면 손해다' '법은 있고 법을 시행하는 룰은 없다' 등 우리의 법문화를 훤히 꿰뚫고 비아냥거릴 정도다. 최근에는 한낮에 그것도 목숨을 담보로 한 자동차역주행을 떼로 자행하는 등 법경시 풍조가 정도를 더해 모골이 송연하다. 그만큼 반칙과 편법을 통한 법 경시풍조가 심하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물의가 따르겠지만, 정치권을 비롯 일부 사회지도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의 날'을 제정한지 43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고속성장, 세계 10위권에 오르며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권력형 범죄와 불법비자금 조성, 변칙을 통한 재벌세습 등 범법행위가 끊이지 않아 법과 규칙을 지키는 데는 후진국이다. 일부 있는 자(권력·돈 등)의 죄로 법의 존엄성이 상실돼 법치를 망가뜨리고 있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트브루흐는 법의 이념은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에 있다'고 했다. 이는 정의와 평등, 공공복리, 일반인의 의식과의 부합을 의미한다. 이 것이 깨진 상태에서 원상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법과 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매년 1%포인트가량 경제성장률을 끌어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법·질서준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보고서 내용이다. 역으로 계산하면 법·질서만 지켜도 1인당 국민소득과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법 준수를 생활하고 그에 맞는 사회규범과 제도를 다시 만든다면 진정한 선진사회로 갈 것을 확신한다.
끝으로 한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아이러니 하게도 법의 날에 맞춰 재·보선이 치러진다. 이번 선거에서는 평등과 공공복리를 외면하고 일반인의 의식과 부합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반드시 솎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제대로 써야 인치가 아닌 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법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다. 법의 날을 맞아 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조 용 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