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원종 (소설가)
1960년대 어느 지방에서의 일이다. 다섯명으로 구성된 한 위원회가 있었다. 교육에 관련해서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위원회였다. 그 위원회의 위원장은 당연히 욕심낼 만한 자리였다. 위원 다섯명 중 두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갑과 을이라고 하자. 남은 세명 가운데 둘은 갑의 제자였다. 그 두 사람은 스승인 갑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이 선생님을 찍고 선생님이 선생님을 찍으면 3대 2로 우리가 이깁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거꾸로였다. 3대 2로 오히려 을이 이겨서 위원장이 되어버렸다. 어이없어하는 제자들에게 갑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나를 찍나…."

정말 옛날 이야기다. 그것이 그 시대의 정서였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 나선 어린이도 차마 제 이름을 써내지 못하던 무렵이었다.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모든 공직도 마찬가지였다. 속마음이야 어디에 있든 겉으로는 사양하고 자신의 능력부족을 드러내며 마지 못한듯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다른 적임자도 많지만 사람들이 원한다면 한 번 해보겠다' 이런 것이 그 시대의 출마의 변이요 취임사의 수사학이었다.

지금 와서 그 시대의 그런 정서를 위선이요 이중성이라고 비판하기는 쉽다. 그로 인해 빚어진 부작용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위선과 이중성은 그 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모두 최소한의 도덕성, 최소한의 겸양과 절제와 분수를 지키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자신의 능력을 시장에 내다 팔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만 침잠하는 많은 은사들이 있었다. 정치나 시류와는 무관하게 한 길을 걸어가는 학자, 예술가, 사회운동가들이 그 어떤 권력자보다도 존경을 받곤 했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반장선거에서 라이벌의 이름을 써내는 아이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모든 공직자들은 보는 이가 낯뜨거운 청문회 석상에서도 자신이 적임자임을 끝까지 주장한다. 각종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자신만이 해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대로 나서야만 하는 시대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야 하는 세태다.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한가를 따진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처신과 변신이다. 자기 전공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지명도를 얻은 사람들이 무슨 정해진 코스처럼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한 흐름이 되고 말았다. 물론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학자 출신이라고, 전직 CEO라고, 시민운동가라고 해서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고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인생의 마무리를 정치판에서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왜 그들은 전문가로서의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제대로 성숙하고 민주화된 사회는 그 동력이 정치권력에 편중되지 않고 각 분야에 고르게 균분되어 있어야만 한다. 원로 학자, 예술가, 언론인, 시민운동가의 한 마디가 대통령의 한 마디와 맞먹는 비중을 가지는 사회라야만 제대로 살 맛이 나지 않겠는가? 말로는 탈정치의 시대요 프로들의 시대라는데 70년대나 80년대가 아닌 지금도 끊임없이 정치권으로 유입되어가는 전문가들의 행렬은 그래서 안타깝다.

또 옛날 이야기를 하자. 문인단체의 회장은 커녕 대학의 학과장 자리까지도 감당할 수 없다며 사양하고 문화훈장 또한 거절했던 소설가 황순원 선생은 생전의 어느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치권으로 가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막상 본인이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하기가 쉽겠습니까?"라는 제자의 우문에 대한 현답이었다. "그런 제의 자체가 오지 않도록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처신이다."

말 그대로 백가쟁명의 오늘을 바라보며 새삼 그런 선생들이 그립다. 그런 말씀들이 듣고 싶다. 아니다, 그런 분들을 기릴 줄 알던 옛날이 그립다.

/고 원 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