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성근 (변호사)
사무실과 법정만 오가던 단조로운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 화창한 봄날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넓은 들판이 펼쳐진 전원지역으로 법원의 현장검증에 참여하고 왔다.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분쟁 당사자의 주장과 서류 형식으로 만들어 제출된 입증자료만 가지고는 분쟁의 원인이 된 구체적 사정이나 피해정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면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감정인으로 선정하여 현장 검증에 참여시키고 그들로부터 조언을 듣기도 한다. 이들이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한 감정서는 판사의 최종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나의 의뢰인측 가족들은 50년 이상된 오래된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출가하여 그곳을 떠났고 연로하신 아버지만 계속해서 그 집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나 빈집이 되었는데 어느 날 일반도로에서 그 집 대문 앞까지 이어져있던 좁은 골목길이 없어졌다는 내용의 소식을 이웃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설마하는 마음에 즉시 옛 집을 찾아가보니 놀랍게도 전에 골목길이 있던 곳에 새로운 담장이 세워져있고 진입로는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사실 위 진입로는 의뢰인 가족들의 소유가 아니고 앞집 사람의 땅인데 그 땅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도로에 나갈 수 없어서 길이 약 30 폭 약 2 만큼을 거져 사용해 왔었다.

그런데 그 앞집 가족들은 뒷집에 사람이 살지않고 빈집이 된 틈을 이용하여 통행로를 구획하던 양쪽의 옛 담장을 모두 헐고 그 한가운데에 한 줄로 된 새 담장을 만들었고 종전 진입로 부분은 마당과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반 도로에 진입할 수 없는 맹지인 토지를 가진 사람은 이웃 사람의 토지 일부분을 진입로로 사용할 권리가 있고 이는 '주위토지통행권'이라는 명칭으로 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다.

만약 이웃 주민이 통행로 사용 요청을 거절하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면 법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졸지에 진입로를 잃은 뒷집의 토지 소유자가 그 앞집 토지 소유자를 상대로 담장을 철거하라는 요구와 함께 통행권의 범위(진입도로의 폭과 길이)를 확인해 달라고 법원에 도움을 청구한 내용이다. 나의 상대방측 변호사는 집 뒤편의 공터를 사용하여 돌아간다면 일반도로까지 연결될 수 있으므로 종전과 같은 위치에 도로를 개설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대응하였다.

법에 의해 보호되는 통행권의 범위는 최소한 자동차 1대라도 지나갈 수 있는 폭에다가 길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상대방이 주장하는 위 대체도로는 연립주택의 건물 사이를 지나가야 하고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까지 거쳐야 하는 좁은 등산로 정도였다. 현장에서 양측 변호사와 당사자들의 격앙된 주장을 묵묵히 듣고 나서 판사는 동행한 측량 전문가로 하여금 종전 진입로 지점을 지적하면서 이곳에 폭 2의 도로를 내는 측량 도면을 작성해 보라고 했다.

상대방 가족이 속삭이던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땅이 얼마나 비싼 땅인데 거져 내 놓느냐 !"

주변을 돌아보니 의뢰인 가족의 건물만 오래된 흙벽돌 집이고 대부분 근사한 외모의 전원주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개발의 여지가 많아 보였다.

이웃간의 전통적인 정이 무너진 현실을 체감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현장검증에 참여했던 순박한 의뢰인들은 장래 재판에서 승소하더라도 현재의 담장을 철거하고 새로 진입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충돌을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 지역이 개발되지 아니하고 땅값도 별 변동이 없었다면 옛 진입로는 그대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재산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치도 높이고 토지 경계를 확인하여 이웃에 빼앗긴 내 땅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장 성 근(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