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토지소유주와의 갈등으로 인해 40여년 동안 바람막이였던 낡은 판잣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할머니들이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최재훈기자·cjh@kyeongin.com
가족과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의정부 미군기지촌 '빼벌'마을 할머니들이 유일하게 남은 보금자리에서 마저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가릉동 '노랑다리'와 함께 의정부지역 양대 미군기지촌 중 하나인 '빼벌'에는 현재 23명의 할머니들이 13채의 허름한 판잣집에서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판잣집 13채서 23명 모진 삶

가난에 내몰려 기지촌으로 들어왔고 한때는 정부의 관리를 받기도 한 이들 60~70대 기지촌 할머니들은 오갈데 없이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주는 한달 10만~30만원의 생활지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빼벌마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모 종중측이 최근 평당 4천원씩 받던 토지세를 2만원으로 인상하고 이 돈을 내지 못 할 경우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면서 할머니들은 큰 시름에 빠졌다.

별안간 토지세 인상 "집 비워라"

먹고 살기위해 기지촌으로 흘러들어와 아무렇게나 판잣집을 짓고, 종중에 약간의 토지세만 내고 걱정없이 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의 택지개발 등으로 거세진 개발압력은 이처럼 빼벌 할머니들의 시름을 깊게했다.

종중과의 땅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종중 땅을 관리하던 산지기 최모씨가 숨진 이후 할머니들은 이씨 종중과 처음으로 정식 임대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엔 '대지사용료를 주변 대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연 10% 범위 내에서 부과함'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건물이 있는 한 이 계약서 내용이 유용함'이라는 단서조항도 붙어 있었지만 힘없는 할머니들에게 계약서는 종이쪽지에 불과했다.

병든몸 이끌고 어디로 갈지…

80년대 초까지도 평당 1천~2천500원 정도의 토지세를 받던 종중측이 토지세를 인상하고 할머니들을 상대로 토지명도소송을 진행중이다.

김지순(78·가명)할머니는 "쪽방 11개가 있는,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53평)에서 4명의 할머니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그동안 토지세로 21만3천원을 내왔다"며 "할머니들이 받는 생활지원금을 모두 줘도 토지세를 못 낼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자연 (73·가명)할머니는 "우리가 무슨 돈이 있다고 병든 몸 이끌고 어디로 가라는 건지. 얼마남지 않은 인생이 걱정"이라며 "이제 쫓겨 나면 일가친척하나 없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지 아무런 방법도 없다"고 울먹였다.

이씨 종중 관계자는 "현재 의정부 법원에 종중땅을 돌려달라는 명도 소송을 제기한 상태"라며 "법원 판결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