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1989년 1월 언론전문비평 주간신문인 '언론노보'를 창간하고, 1995년 5월, 지금의 미디어오늘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보진영의 논객들과 양심적인 현업인들, 미디어 활동가들의 신뢰를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5월8일자 인터넷 기사 가운데 "서울기자들, 경인일보를 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지난 5월7일 오전, 삼성 비정규직·하청노동자 공동투쟁단 주최로 열린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 집회에 대한 보도를 두고 한 표현이다. 아무도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삼성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강압적 무노조 경영'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낸 지역신문에 대한 호감 때문일 터이다. 삼성이 차지하는 언론사의 광고시장을 염두에 둔다면, 서울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없는 지역 언론에서 삼성의 비리를 기사화 하는 것이 의아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디어오늘에서 이처럼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제목을 달아가며 경인일보를 보라고 한 것은 독특한 사례가 틀림없다. 더구나 동종의 언론사를 두고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지역에 대한 서울 중심의 시각과 평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평가를 받은 측에서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평가가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 기사의 내용과 무게 뿐 아니라, 나아가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사회적 의미 때문이다. 또한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의 횡포에 대하여 칼을 빼든 지역의 한 언론사에 대한 의혹과 기대를 정리한다는 것이 미디어 비평가의 입장에서 벅차긴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경인일보는 4월30일, '마성 IC 우회도로 지옥길' 기사부터 시작해서 5월7일, '에버랜드 도리 팽개치고 실리', 5월8일 '삼성 무노조 원칙 하청업체 족쇄', 5월10일 '래미안 입주민 삼성 상대 집단민원' 등의 기사를 통해 삼성의 문제에 대해서 지켜왔던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삼성이 지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에 속한다. 서울기자들이 주목한 것은 이러한 지엽적인 문제조차 외면했던 서울의 주류언론들의 각성을 촉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삼성공화국'으로 표현되듯, 우리나라 경제 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적으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X파일 문제와 최근 불거진 시사저널 사태는 언론까지 장악하려는 삼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 대표 기업으로 삼성이 상징하는 여러가지 긍정적인 요소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 권력화 된 삼성이 추구하고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든 관철되는 현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사회에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한 삼성의 주장, 그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분석이 과연 공론화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삼성의 이익이 마치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여겨지는 왜곡된 현상 속에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과 골병드는 대한민국은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것이다. '중은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 삼성이 지닌 약점을 드러내고 공론화시켜 치유해나가는 것은 삼성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성역을 건드리는 심정으로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척 간으로 여겨졌던 삼성의 치부를 과감하게 보도한 경인일보는 그런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하다. 이제 그 주목이 독자의 신뢰로 자리잡는 날, 그 신뢰는 역사를 진전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것을 담보할 진정성은 이제 경인일보의 몫이다.
/이 주 현(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