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첫 인터뷰에서 "잠재적 역량을 가진 아·태의 젊은 과학자들을 키우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아·태이론물리센터의 국제공동연구 그룹의 새로운 구축을 위한 막스플랑크 재단의 직접 투자라는 큼직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막스플랑크재단(Max Planck Gesellshaft)은 '미래를 위한 연구'를 목표로 탁월한 연구와 과학 진흥을 위한 비영리 기구이다. 막스플랑크재단은 2006년 타임지에 의해 과학분야 1위로 평가되고 창립 이후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기초연구 네트워크이다. 이 재단은 1948년 창립된 이후 '대학의 서포터'를 자처하며 소장과 대학교수의 겸직, 대학의 특성화 지원, 젊은 학자 육성 등 연구소가 소재한 지역의 대학과 모범적인 윈윈 협력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의 창시자'이자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힌다. 그는 음악적 재능도 매우 뛰어났지만 물리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첫 지도교수였던 필립 폰 졸리 교수는 "이 분야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제 몇 개 구멍만 메우면 된다"고 조언하며 그를 말렸다고 한다. 막스 플랑크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 없이, 단지 이 분야의 기초를 이해하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이론물리를 하다 보니 기대를 훨씬 넘게 되었다. 사실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한꺼번에 보여주지는 않으며, 아직도 풀지 못한 자연의 신비가 쌓여 있는 것이다.
노벨상에 견줄 수 있는 막스 플랑크의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막스플랑크재단을 만든 것이다. 막스플랑크재단과 연구소 시스템은 독일의 과학기술뿐 아니라 경제 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다. 독일이 통일된 이후 막스플랑크재단은 구 동독지역의 부흥을 위하여 동쪽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대표적 산업도시로 명성을 날렸던 드레스덴은 엘베강 밸리에 소재한 동부 색소니 지방의 수도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화된 이후 지난 40년간 동독체제에서 경제 산업적으로 쇠락을 거듭해 왔다. 통독 이후 드레스덴은 국가적 재건 작업을 통해 '독일의 실리콘 밸리'이자 독일연방의 동부 과학, 문화, 정치, 경제 거점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이 엄청난 변화를 이끌고 있는 주역은 기초연구 분야의 3개 막스플랑크 연구소, 응용기술 연구를 위주로 하는 10여개의 프라운호퍼 및 라이프니쯔 연구소 등 신규 첨단연구소 네트워크이다. 이제 드레스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과대학인 드레스덴 공대, AMD, 토판, 인피니온, 폭스바겐 등 수많은 컴퓨터 하드웨어 및 첨단 벤처기업의 창업 및 이전, 그릭 지멘스의 테크노파크 설립 등으로 이상적인 연구소, 대학, 기업, 테크노파크의 클러스터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 부임한 피터 풀데 소장은 이 드레스덴 시스템의 핵심 연구소인 막스플랑크 복잡계물리 연구소를 설립하여 오늘날 세계적 연구소로 키워냈다.
막스플랑크와 드레스덴 시스템의 성공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연구 시스템과 지원 방향에 대해 좋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194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오토 한은 "발견은 보통 가장 쉬운 길이 아니라 가장 복잡한 길로부터 나온다. 처음 추구했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발견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현재 답보상태인 우리나라 과학 분야 국가경쟁력을 혁신적으로 제고하려면 '미래를 위한 연구' 차원에서 기초과학 지원의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승 환(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