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왜 비뚤어져 있지?"
학생이 대답했다.
"제가 안그랬습니다."
어이없어진 장학사가 이번엔 교사에게 질문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래 사올 때부터 그랬습니다."
장학사는 교장선생을 모셔오도록 했다. 전말을 듣고 난 교장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말했다.
"원래 국산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의 획일성·관료주의·자기비하 등을 뭉뚱그려 비꼰 농담으로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던 내용이다. 그래도 이 농담 속의 교실은 상황이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지구의를 갖다놓고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우리들은 대부분 평면지도를 놓고 세계지리를 배웠다. 아시아가 가운데 있는 지도가 우리에게는 상식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쓰는 세계지도는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의 지도에는 유럽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이해가 간다. 왜 서양인들이 우리나라가 있는 지역을 두고 극동이니 동북아니 하고 부르는지를.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로 건너갔으며 어떤 경로로 잔인한 노예매매가 이루어졌는가를. 하지만 가장 큰 깨달음은 당연히 만국공통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지도가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우리 식 지도를, 서양인들은 서양식 지도를 가지고 있다니! 지금은 한 발 더 나아가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세계지도를 고안해낸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어떤 도법으로도 평면 위에 둥근 지구의 형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도의 근본은 지구의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평면지도가 아닌 둥근 지구의를 놓고 세계를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평면지도에는 중심부와 변방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니치 자오선을 따르면서도 한사코 아시아를 가운데 앉힌 아시아식 세계지도에는 서세동점의 격류 속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아시아인들의 의지가 배어 있다. 우리가 중심이라는 관점이다.
유럽인들은 또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위치를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생각했다. 극동이니 동북아니 하는 호칭은 우리가 원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보아 붙인 이름일 뿐이다. 그들의 세계지도 속에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방일 따름이다. 지도의 오른쪽 끝이 왼쪽 끝과 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어느나라 사람이나 쉽게 깨닫지 못한다.
둥근 지구의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중심과 변방이 따로 있지 않다. 조금만 돌려서 보면 중심이 변방이 되고 변방이 중심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의 본래 생겨먹은 모양새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디디고 선 땅이 세계의 중심임을 알아야 한다. 다른 모든 이들 또한 저마다 세계의 중심에 서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 중심이 다른 중심을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 변방이라 백안시할 권리도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지구의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조선 인조 때의 소현세자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1645년에 귀국할 때 가져왔다는 것이다. 360여년이 지난 셈이다. 이제는 이 지구의를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글로벌리즘이 화두가 되고 FTA가 최대 현안이 되는 시대, 우리와 피부색깔이 다른 외국인들이 직장 동료가 되고 이웃집 며느리가 되는 시대다. 나만을 중심에 놓고 다른 이들의 자리를 변방이라 치부해버리는 평면지도식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 모두가 중심이기에 모두가 소중하다는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어찌 지리공부에만 국한할 일이겠는가. 둥근 지구의를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고 원 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