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대의 성공은 교수들과 학생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대학 최일신(54) 총장의 선견지명과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성공이 가능했다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경햄도 최 총장이 대학 교수 시절 자신이 직접 설립한 교내 벤처기업이다. 한경대가 국내 대학 최초로 친환경농림축산물 및 우수농산물(GAP)인증센터로 선정된 것도 그의 업적이다. 하지만 정작 최 총장은 긍정의 힘을 믿으면서 현장에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서 자신의 업적에 대해 겸손해 했다. 최 총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경햄 창업 4년 만에 IFFA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소감은.
"2003년 창업 당시부터 IFFA 출품을 목표로 했지만 성과가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솔직히 예상 못했습니다. 더구나 출품한 8개 제품 모두가 상을 받게 될 줄은…. 제품만 보내고 돈이 없어 사람은 보내지도 못했거든요. 아무런 홍보도 없이 맛과 품질로만 평가받은 셈이니 영광일 수밖에요. 한경햄이 100% 국내산 돼지를 고집해 국제 식품업계의 검증을 받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IFFA는 품질이나 맛은 물론이고 원재료까지 까다롭게 심사하거든요. 한경햄의 수상은 농산물 시장 개방 속에서 휘청대는 국내 축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겁니다."

-한경햄을 창업하게 된 계기는.
"국내 햄 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가격경쟁으로 품질과 맛을 유지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제대로 된 햄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지요. 농학을 전공한 사람 입장에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식품을 공급하는 일이 학문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했거든요. 놀고 있는 대학 기자재를 활용할 수 있었구요. 실험실 기자재는 학기 중 잠깐을 제외하고는 항상 놀고 있거든요. 햄공장을 하게되면 이를 1년 내내 활용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 양돈농가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돼지 값에 따라 일희일비 하기 보다는 부가가치를 만들어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니 사업확장을 생각할만도 한데.
"프리미엄 시장은 유한합니다. 더구나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이윤의 논리를 쫓아갈 수밖에 없죠. 한경햄은 기본에 충실한 기업으로 남을 겁니다. 한경햄은 대학 벤처기업입니다. 수익 보다는 농학에 충실한 기업이 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민간 식품회사의 경영방식과 너무 다른데.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 기업들은 절대 조급하지 않습니다. 창업초기에는 수익과는 무관하게 첫 5년 동안은 투자만 하는 식이죠. 반면 우리 기업들은 창업 때부터 수익을 쫓습니다. 이래서는 절대 훌륭한 기업이 나올 수 없어요. 특히 식품회사는 더욱 그렇죠."

-최근 몇 년 동안 대학에 벤처바람이 불고 산학협력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지 오래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학이나 공학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어떻게 농학을 생각했는지.
"처음에 막걸리를 만들고 김치 얘기를 꺼내니 '총장이 무슨 막걸리 얘기나 하고 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수농산물(GAP)인증센터를 만들 때도 그랬고요. 하지만 교수라고 고상하게 학문적 이론만 되뇌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교수일수록 현장과 가까워야죠. 친환경은 이제 산업의 주류로 떠오를 겁니다. 한경대가 있는 안성시는 농업인구가 많고, 더구나 한경대는 전통적으로 농학분야에서 강세를 보여왔으니 친환경은 한경대 산학협력의 주제로 안성맞춤입니다. 잘할 수 있는 것,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입니다. 처음에는 관심도 갖지 않던 GAP인증센터가 결국은 대학, 농가, 소비자에게 모두 도움을 주고 있고, 타대학들도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으니 제가 영 틀린건 아니죠."

-사회에 대한 대학의 실용적 기여를 강조하다보면 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텐데.
"이론과 현실은 적당한 긴장관계가 필요하지만, 대학은 상아탑에서 쌓은 실력을 현장에서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농업과 같은 실용분야는 특히 그렇지요. 농업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보여주기 전에는 믿지 않거든요. 그러려면 교수가 현장을 체험해야죠. 선진국 대학 교수들은 햄을 가르칠 때 직접 칼질을 합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실용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들 조차 이론에서 시작해 이론으로 끝나니, 그 결과가 같을 수가 없는 겁니다."

-최근 대학 농장 3만평에 꽃을 심었다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수도권은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지역보다 장사하기 좋은 조건이란 얘기죠. 물론 대학이 직접 나서면 안됩니다. 장사에 어두운 사람들이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하고 성공한다 해도 돈 문제로 시끄러워질테니…. 다만 대학은 아무도 안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인구가 5만밖에 안되는 일본의 어느 도시에는 도시 전체를 꽃으로 가꾸면서 여름과 겨울에 각각 1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대학 농장에 경관보전식물을 심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콩을 심는 것 보다 훨씬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농민들에게 직접 보여주려는 겁니다."

-앞으로 한경대는 어떤 대학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친환경 분야에서 10년 안에 세계 100대 대학에 들어가는 겁니다. 과장된 얘기가 아닙니다. 그동안은 목표의식도 노력도 없었습니다. 복권도 사야 당첨이 되든 말든 하듯이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결과는 나타날 겁니다. 노력한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많은 도내 대학들이 지방대라는 이유로 좌절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의 대학은 경기도 대학들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노력해야지요."

대담/윤인수경제부장

▲ 3만평 규모 꽃 심은 대학 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