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시 칠장산에서 김포 수안산까지 북서쪽 방향으로 약 160㎞ 구간에 산등성이가 뻗어 있다.
이 산줄기는 안성, 용인, 성남, 수원, 의왕, 군포, 안산, 안양, 시흥, 부천, 인천, 김포 등의 행정구역에 펼쳐져 있다.
경기·인천 서남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한남정맥은 한강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가르는, 도심 속 산맥이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강으로,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수도권 핵심 녹지축이지만 한남정맥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사이 녹지축은 경인지역 도처에서 진행중인 각종 개발로 인해 끊기고 훼손되고 있다.
한남정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인천 녹색연합은 최근 전문가와 함께하는 시민탐사단을 꾸렸다. 물줄기는 굴포천 살리기 시민모임 회원인 노현기(44·여)씨가, 식생은 민속식물연구소 송홍선(46) 박사가, 등산로 조사는 녹색연합 생태도시부 신정은(29·여)간사가 맡았다. 이들과 더불어 나무를 좋아하고 물을 아끼는 이들이면 누구나 탐사단에 참여할 수 있다. 경인일보는 오는 10월까지 계속되는 탐사단의 발길을 따라가고 현장의 목소리를 모두 10차례에 걸쳐 담아본다.
■ 한남정맥 시민탐사단 참가자
민속식물연구소장 송홍선(46)박사, 굴포천살리기 시민모임 노현기(44·여)회원, 인천녹색연합 생태도시부 국장 장정구(34),생태도시부 신정은(29·여) 간사, 인천대학교 물리학과 장영록(44)교수, 권영무(55·자영업), 홍은경(44·여·주부)씨와 딸 혜빈(15·여·중3), 경인일보 사회부 김명래 기자
# 한남정맥 탐사, 첫 발을 내딛다

"산이 묘해요. 끊길 것 같으면서도 계속 이어져요. 한 번 가보세요."
지난 12일 오전 10시, 민간인통제선 출입을 위해 검문소에서 '통관절차'를 밟고 있을 때 군부대 관계자가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탐사단원들에게 한 말이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탐사단이 첫 발을 내디딘 곳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에 있는 문수산 진입로.
한남정맥 끝자락인 문수산은 한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어귀인 조강과 맞닿아 있다. 숲은 이른 아침까지 내린 비를 머금은 채 은은한 향기로 탐사단을 맞았다. 물푸레나무, 병꽃나무, 생강나무, 리기다 소나무, 노간주나무, 분꽃나무, 팥배나무, 참회나무 등 여러 수종이 산길을 감싸고 있었다.
이날 산행에 참여한 장영록(44) 인천대 물리학과 교수는 산에 오르며 탐사단원들에게 참나뭇과 나무 구별하는 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잎줄기에 따라 구별하면 돼요. 잎줄기가 길면 줄참나무, 갈참나무고 짧으면 떡갈나무, 신갈나무예요. 떡을 갈무리하는데 쓰인 게 떡갈나무고, 신발을 갈무리하는 데 쓰인 게 신갈나무예요."
10년 전부터 '숲과 문화 연구회'라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장 교수는 "성화 봉송할 때는 같이 뛰는 사람이 중요한 것처럼 좋은 일 할 때는 옆에서 자리만 채워줘도 도움이 된다"면서 참여 동기를 밝혔다.
# 서어나무 군락과 만나다

탐사단은 문수산 정상 서쪽 비탈을 내려오다 약 1만여평 넓이에 퍼져있는 서어나무 군락과 만났다.
중부지역의 대규모 서어나무 군락은 지난 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불암산 남쪽 삼육대 인근지역, 원주 치악산 등에서 발견되나 분포지역과 면적이 제한적이다.
서어나무는 중부이남에 분포하는 자작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로서 식생의 변화과정에서 최종단계의 숲(극상림)을 이루는 나무다. 인천 녹색연합은 이곳 서어나무는 신갈나무, 당단풍 등과 함께 상층부의 우점종으로 자생하고, 생육상태도 양호하다고 밝혔다.
민속식물연구소 송홍선(46) 박사는 "산림 생태계에서 서어나무 군락은 안정된 식물사회를 나타낸다"면서 "이 지역은 앞으로 체계적인 생태조사와 함께 보전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군하리 마을 이장과의 대화

안씨는 "월곶의 자랑, 문수산을 다녀온 여러분을 환영한다"면서 탐사단을 따뜻하게 맞았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안씨는 탐사단원들에게 '마을 이야기'를 들려줬다.
"월곶은 군사보호구역 제재를 많이 받아요. 뭐 하나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예전에는 군대를 하나의 벽으로 생각했어요. 굉장히 완고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못자리철과 벼베기철에 군인 없으면 농사 짓기 힘들어요."
개발이 한창인 김포시내 땅은 '금싸라기'로 불린다. 안씨는 "여기에 발 붙이지 못한 이들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만 연고가 없는 40대 남자와 50대 여자 2명에 대한 장례를 치러줬다"는 안씨는 "도시에서 살 방을 구하지 못해 월곶, 하성면에 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개발의 여파는 이곳 시골 마을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는지. 안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 군부대가 버린 폐기물로 훼손되는 수안산
13일 오전 9시. 탐사단은 수안산 산행을 시작으로 한남정맥 탐사를 이어갔다.
정상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수안산성터(경기도기념물 제159호)가 있다. 돌로 쌓은 성벽은 능선을 따라 약 680m 구간에 남아 있었다. 탐사단은 수안산성터 비탈 곳곳에 버려진 군부대 쓰레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군용마크가 찍힌 철제 의자, 방독면 음료취수장치, 각종 사무집기 등이 산성터 비탈에 버려져 있었다.
역시 수안산 정상 헬기장 부근 산비탈에는 교통호를 만드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폐타이어 50여개가 곳곳에 방치돼 있었다. 또 학운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밤나무 농장 부근에는 국방무늬로 장식된 간이 화장실이 방치돼 있었다.
녹색연합 생태도시부 장정구(34) 국장은 "군부대 주둔지와 훈련장 일대는 환경오염의 사각지대"라면서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민간인통제구역 습지서 희귀식물 매화마름 김포지역 자생 첫발견 '의미'

시민탐사단은 한남정맥에 첫 발자국을 찍으면서 의미있는 발견을 했다. 환경부가 2급 멸종위기식물로 지정한 희귀식물 '매화마름(사진)'이 자생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탐사단은 지난 12일 한남정맥 끝자락인 김포시 월곶면 민간인통제구역에 있는 습지에서 매화마름이 서식하는 것을 발견했다.
매화마름은 물속에 잠겨 살아가는 침수성 수생식물로서 물속의 잎은 실처럼 갈라지고 4~5월에 흰빛의 꽃이 핀 후 곧바로 열매를 맺는다. 1910년대에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매화마름은 1990년 말 이후 강화도 초지진을 비롯해 인천 영종도, 영흥도, 경기 대부도, 충남 안면도, 전북 부안 등 주로 서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는 법정보호식물이다.
식생조사팀으로 참여했던 민속식물연구소 송홍선(46) 박사는 "매화마름은 강화도, 영종도의 분포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접지역인 김포시의 자생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발견은 김포지역에서 최초이면서 한남정맥의 내륙분포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