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야당의 거목들, 특히 백낙준 박사의 삶을 민족적 차원에서 평가하는 경우 상당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자 회담 종결 후 백낙준 박사가 발표한 성명서를 읽어보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명력이 여전한 구절들이 있다.
"…(전략)… 이제 국민제위의 절대적 지원과 신한·민중 양당 수뇌부와 당원 제위의 협력과 재야유지(在野有志)의 독려가 집중하는 가운데 내가 야당통합운동을 추진하는 4인 회의에 참여하여 미성을 이바지할 수 있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제 통합이 완성됨에 있어 국민제위와 같이 이 기적적 성과를 경하한다…(중략)… 내 비록 적은 존재이나 평생을 지켜온 초당적 정신으로 국가민족에 보답하려는 정성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음을 국민 여러분에게 고(告)하는 바이다."
성명서에 내포되어 있는 통합, 영광, 기적적 성과, 보답하려는 정성 등은 세월의 변화와 무관하게 정치인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이자 정신이다. 집권을 바라는 정치인에게 현실은 일종의 전쟁일 수밖에 없으니 다툼은 필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정치는 더욱 통합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 치열하게 다투고 난 뒤에 상흔을 치유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흘러가야 국가와 국민에게 울림이 있고 감동을 주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사회 구성원들이 바라는 다양한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정치라는 고전적 정의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가치들은 다양하기에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재원으로 서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에 대립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 삶을 대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잣대나 방식이 상이하면 다툼의 정도가 심해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이 와중에서 조국과 민족에 보답하려는 정치인의 정성에 기초한 통합의 마술이 발휘되어 다툼의 결과물이 하나의 기적으로 여겨지는 순간 국민은 감동을 받고 울림이 있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경선 룰을 둘러싼 유력 대선후보간의 다툼이 봉합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금은 찜찜했던 이유도 감동과 울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벼랑 끝까지 가버린 대치가 아름다운 타협으로 결말이 난 것 같은데,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는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론만 보고서는 누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둘 다 서로 자기가 양보했다고 주장하는데, 설령 둘 다 양보한 것이 사실이라도 상대방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울림이 작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에서 진정 '아름다운 경선'이 되려면 여러 장애와 예상되는 다툼이 잘 봉합되어야 한다. 앞으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 부문은 후보검증과 여론조사이다. 공교롭게 이 둘은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각각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부문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후보검증은 박근혜 전 대표가, 여론조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칼자루를 잡고 있고, 상대방은 칼날을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가 겨누고 있는 칼자루와 칼날이 분리되지 않은 채 갈무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은 후보는 물론 후보에 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알아볼 수 있는 과학적인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연후 바른 대선후보를 제대로 선택함으로써 온 나라에 울림과 감동이 있는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임 동 욱(충주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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