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들어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래 입국하기 시작했다. 1993년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덜기 위해 산업연수생 제도가 도입됐다. 이 제도의 맹점은 연수생이란 딱지 때문에 임금착취가 생기고 이에 따라 사업장을 이탈하는 일이 빈발했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불법체류자를 만든 셈이다. 사업주가 연수생을 붙들어두려는 미끼로 임금을 체불하다보니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올해 1월부터 산업연수생제를 폐지하고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됐다.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인력송출 양해각서를 체결한 11개 국가로부터 올해에는 9만명의 인력을 들여올 계획이다.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한다. 고용계약을 하고 출국만기보험과 귀국비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불가피한 사유라면 사업장도 옮길 수 있다.
제도개선으로 임금착취와 인권침해는 줄겠지만 불법체류를 막을 장치는 없다. 취업을 3년간으로 한정하니 현실적으로 기간이 짧다. 남의 나라로 일하러 오는 것은 고국에 남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송출관련비용이 많이 든다. 한국어 시험을 보니 학원에 다녀야 한다. 건강진단도 받고 기술연수도 받아야 한다. 베트남에서는 공식적인 비용만도 700달러나 든다.
정부기관을 송출기관으로 지정하지만 후진국의 공통적인 병인 부패가 만연한다. 수속절차를 밟는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는 모든 단계에 브로커가 끼어들어 돈을 챙긴다. 신청서를 얻는데도 돈을 줘야 할 정도이다. 베트남에서는 최소한 1만달러는 들어간다고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대학졸업자 초임이 150달러인 나라에서 1만달러는 정말 큰 돈이다. 돈 벌러 가려면 빚을 내는 도리밖에 없다.
한국에 와서 한 달에 100만원을 모으더라도 이자까지 치면 빚 갚는 데 1년은 걸린다.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니 어림없는 일이다. 2년 만에 빚을 갚는다손 치더라도 귀국 후에 정착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 남는다. 빚이란 덫에 걸려 사업장을 벗어나 딴 일자리를 얻으니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만다. 불법체류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 약점을 이용한 임금체불, 인격모독이 따르게 마련이다. 단속이란 불안과 추방이란 위협에 떨며 내일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송출국의 송출비리가 도입국의 불법체류로 엮어지고 다시 인권침해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송출비리를 근절하라고 외교적 압력을 넣을 수도 없다. 독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접하여 '손님일꾼'(Gastarbeiter)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도 최근들어 같은 뜻을 가진 guest-worker라는 말을 쓴다. 인력시장에도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배타적 의미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보다는 이주 노동자(migrant worker)라는 말을 쓰는 추세다.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던 가난한 시절을 생각하자. 미국에 일본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들의 고통도 생각하자. 노령화-저출산으로 이주노동자가 경제성장의 한 축을 맡지 않을 수 없다. 불법체류를 사면하여 그들이 정착자금을 마련해 안전하게 귀국하도록 돕자. 우리말을 아는 그들이 한류의 전도사가 되게끔 말이다. 그들에게 반한감정을 심어줄 이유가 없다. 국제사회 공동체로서 그들을 끌어안는 도량을 갖자. 한국도 다민족-다문화 국가로 가고 있다.
/김 영 호(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