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문화가 경제성장, 특히 IT(정보통신) 분야의 세계적 성장을 촉진했을지는 모르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전혀 고려치 않은 '빨리빨리' 문화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통문화 습관이다. 교통경찰관이 없다면 운전자들은 교통흐름을 통제하는 각종 신호나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한 각종 표지판 등을 무시하기 일쑤다. 또 보행자들도 무단횡단이나 차도 걷기 등 사고발생의 원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오죽하면 몇 해 전 한 방송사가 '몰래카메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횡단보도 정지선 지키기, 무단횡단 하지 않기, 안전띠 착용하기 등을 '양심지킴이'로 선정할 정도로 우리 사회 교통문화의 후진성을 역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였을까.
그렇게 바꿔보자고 부르짖었지만 '안전을 무시한 빨리빨리 문화'는 여전하다. 특히 우리나라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에게 나타나는 '양면성'은 교통선진문화로 가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2005년 5월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전국 초등학교 학부모 7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초등학교 학부모의 어린이 교통안전 의식'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10명 중 9명이 자녀의 교통사고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 중 60%는 자녀와 함께 불법 도로횡단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는 등 '걱정 따로, 행동 따로'의 전형적인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또 경찰청이 발표한 2005년 전국 교통사고 통계에서도 한 해 동안 어린이(14세 이하) 교통사고 사망자의 67.5%, 부상자의 41.7%가 보행 중에 발생했다는 통계는 학부모들의 이중적인 교통안전 의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교통안전 의식에 대해 '내 탓'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2004년 대한손해보험협회가 전국 거주 만 20세 이상 운전자 1천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7.5%가 본인의 교통법규 준수 수준에 대해 '항상 준수' 또는 '대체로 준수한다'라고 답한 반면 55.4%가 타 운전자에 대해서는 '교통법규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이들 응답자 중 24.0%는 최근 1년간 교통법규를 위반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고, 이들의 위반 내용은 ▲과속 33.1% ▲주정차위반 29.9% ▲신호위반 15.2% ▲안전띠 미착용 11.2% ▲차선위반 5.8% 등 순으로 조사됐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내 가족, 내 이웃의 생명을 내 자신이 함께 지켜 나가야 한다는 보편적인 '공동체 의식'이 확고히 자리잡을 때 교통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템포 느린' 운전습관 및 보행습관이 절실하다.
웰빙문화가 확산되면서 삶에서도 '느림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제 운전이나 보행에 있어서 이 같은 '느림의 문화'를 덧댈 필요가 있다. 교통안전을 위해 설치된 다양한 요소들, 즉 사거리 신호체계나 교통표지판, 도로 위 표지판 등을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식과 습관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교통안전을 위한 도시화 구조, 지역교통의 관리와 운영 등이 선진화될 때 그 나라의 교통문화는 선진화될 수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박사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교통사고 예방과 감소를 위해서는 경찰의 단속강화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운전자 본인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교통정책 변화에 대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 같은 자기중심적 양면성을 벗어버리고, 타인중심적 공동체의식을 가질 때 우리나라 교통문화는 선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