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건영 (논설실장)
회사원 A씨는 수도권 한 도시에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매일 집에서 일터까지 오는데 승용차로 30~40분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 두 배쯤 소요된다. 한 번에 오는 시내버스가 없어 중간에 갈아타지만, 곧바로 오지도 않는다. 시내 곳곳을 들르며 빙빙 돌아서 온다. 지루하기도 하고 길에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 승용차로 출퇴근한다. 비슷한 처지의 직장인들이 꽤 많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정도는 조금만 바삐 움직이면 굳이 개인 차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 차가 없으면 도저히 삶을 꾸릴 수 없는 이들이 주변엔 훨씬 더 많다. 화물차 운전자들, 채소 등 갖가지 물품을 싣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누벼야하는 이동 상인을 비롯한 각종 영세상인들, 하루에도 수십곳을 찾아다니는 영업사원들, 분초를 다퉈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중소사업자 등등…. 헤아리자면 한이 없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무려 1천600만대로 세 사람당 한 대꼴이라지만, 이는 그만치 차가 생활필수품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오죽하면 집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차량 유지비 부담이 너무 버겁다. 보험료 수리비 등이야 그렇다 치고, 연료비가 너무 든다. 요즘처럼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상황에선 허리가 휘다 못해 아예 꺾어질 판이다. 최근 국제 유가가 뛰면서 국내 유가도 몇 주째 치솟고 있다. 무연 휘발유값이 ℓ당 1천600원 가까이나 육박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이런 기름값의 60% 정도가 세금이라는 사실이다. 휘발유의 경우 ℓ당 526원의 교통세에 주행세 교육세 부가세까지 합치면 자그마치 880원에 이른다. 이쯤되면 주유소에 기름 넣으러 가는 게 아니라 세금을 내러가는 셈이 된다. 기름값이 뛸 때마다 국민은 유류세부터 내려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정부는 언제나 마이동풍이다.

지난 1998년 구조조정 재원 마련 차원에서 교통세를 대폭 올렸다. 그때 정부는 휘발유값이 ℓ당 1천200~1천300원을 넘을 경우 세금을 낮추겠다고 했지만, 좀처럼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국내 휘발유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중간 수준으로 크게 비싸지 않다는 말뿐이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을 감안한 휘발유값은 일본의 약 3배, 미국의 6배, 독일의 2배 수준이라 한다. 소득 대비 세금부담도 한국을 100으로 할 때 미국 4, 일본 22.5, 독일 51로 한국 소비자들의 부담은 미국의 25배, 일본의 4.4배, 독일의 2배나 된다. 그런데도 세금을 내리면 유류절약 의식이 해이해진다는 식의 속 보이는 말만 되풀이 한다. 쉽게 거둬지는 세금을 포기 안하려고, 국민 생계야 어찌되든 무조건 낭비로만 몰아친다.

하긴 가만 있어도 연 26조원의 막대한 돈이 저절로 걷히는데 누군들 포기하고 싶을까. 애써 새로운 세원을 찾을 필요도 없다. 주유소 정유사들만 잘 챙기면 될테니까. 오죽하면 세금을 내리긴커녕 경유에 붙는 세금은 되레 더 올린다고 하겠는가.

'쉽게 번 돈은 쓰기도 쉽다'고 했던가. 세금 걷기가 이처럼 쉽다 보니 곳곳에서 혈세가 쉽게 새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씩 해외연수 나가 매일 골프장이나 드나드는 일부 고위 공직자들, 해외 유명관광지나 휘젓고 다니는 공기업 감사들, 사업계획 등을 연거푸 뜯었다 고쳤다 하며 막대한 돈을 퍼붓는 정부부처나 자치단체 등등…. 혈세 새는 데가 어디 한 두 곳인가. 그 사이 어린 백성들의 가슴만 새까맣게 타들어갈 뿐이다.

이제 국민은 더 이상 호소하기에도 지쳤다. 다만 올해 말 대선이 있고, 내년에 총선이 있다니 그 때에나 기대를 걸어본다. 그래서 대선 총선 주자들에게 부탁한다. 갖가지 달콤한 공약들 다 좋지만, 무엇보다 '터무니없는 세금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방법부터 모색해 달라고.

/박 건 영(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