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화 투쟁은 5·16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군사독재 정권의 강고한 저항을 국민의 힘으로 극복하고 국민의 자유의지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연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6·10 민주화 투쟁을 절반의 성공이라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6·10 민주화 투쟁의 뒤를 이은 것이 그 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6·29 선언이후 7, 8, 9월 석달 동안 전개된 노사분규는 건수로나 규모면에서 가히 폭발적인 노동운동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 중심에 그동안 제대로 사람대접 받지 못했던 블루칼라가 있었고 스스로 위선적인 선민의식에 젖어있던 연구소, 대학, 병원 등의 화이트칼라들이 동조하였다. 정치상의 민주화 바람이 산업조직과 각종 조직 내의 민주화 요구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 바람은 사회 전반의 민주화 요구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 이후의 청사진에 대한 밑그림이 미비한 상황에서 산업현장의 민주화운동은 대부분의 민주화 운동세력들이 직선제 개헌이라는 약속에 만족하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로 그들만의 운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이후 그들의 요구는 대외 개방과 국경없는 경쟁을 전제로 한 세계화의 물결속에 휩쓸려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한 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좌절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제 6·10 민주화 투쟁 당시 그 절절했던 정치상의 자유결정권, 군사독재정권의 위협과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잊어버렸다.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눈만 뜨면 너나 할 것없이 끊임없는 경쟁 속으로 내몰리는 상황 하에서 하위 80에 속한 대다수의 민중은 상대적 박탈감에 허탈해졌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더 확대되었다. 과연 정치적으로 달성한 민주화 성과에 걸맞은 사회경제적 성과를 올렸는가에 대한 회의가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절반의 성공도 과찬이라는 평가가 낯설지 않다.
지금처럼 소득간, 지역간, 사회계층간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 사회 모든 부문에서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양극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나? 차라리 전OO이 할 때가 좋았어' 라는 냉소적인 얘기를 흔히 듣는다. 정치상의 자유획득이 곧 경제적 평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민중들은 드디어 자유로부터의 도피처를 찾는 듯이 보인다. 차라리 일정한 자유를 유보하더라도 먹고 살기가 편했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그러나 실제로 그 누구도 과거의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세계화와 그로 인한 20대 80사회로의 전개가 어쩔 수 없는 추세라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는 결국 정부의 다양한 복지정책의 확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성장이 아닌 복지를 강조하면 곧 좌파로 몰린다는 것이다. 좌파가 겁나는 것이 아니라 분단 상황에서 좌·우파를 따지는 가운데 문제의 해결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는 것이다.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실용주의적 대응이 돋보이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