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항쟁과 새천년 벽두에 성사된 6·15 공동선언은 굴절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냈다는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이다. 검증되지 않은 정치적인 배경이나 의도로 흠집을 내기도 하나 이는 다른 영역에서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수치스런 역사와 역사의 진전을 이루어낸 소중한 유산이 공존하는 6월, 그래서인가 6월은 책상머리보다는 거리의 아스팔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민중의 함성 때문이다.
모순된 역사에 저항하는 젊음이 있고 피 끓는 함성이 살아있는 6월, 그것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 서울시청 광장에서 휘날리는 미국 국기, 성조기를 본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지난 6월6일, 재향군인회와 보수기독교단체가 주최한 '북핵완전포기 촉구 국민대회'에 참여한 사람들 손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들려있었다. 행사 중간에는 수십 에 이르는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으로 움직이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물론 서울시청 광장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시청 광장을 차지한 수구 세력들의 3·1절, 8·15 행사에서는 늘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작년 언제인가 전시작전권환수 반대 집회에 참석한 퇴역 장군의 손에 들린 성조기를 본 적도 있다. 기절초풍을 할 일이다.
대한민국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공화국이라 성조기를 들고 나와 "미국만세"를 외칠 수 있는 나라다. 문제는 그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이다. 그들에게 있어 미국은 " 6·25전쟁 시 대신 피 흘려준 천사의 나라"이고 "북한의 핵으로부터 보호해줄 어버이 나라"이다. 왜, 6·25가 일어났고 피폐해진 북한이 왜 핵무장을 했는지는 아예 모르거나 관심 없다. 매일아침마다 광화문에서 개성행 버스가 출발하고 인공기가 선명한 화물선과 비행기가 부산과 인천에 드나들며, 시베리아 대륙으로 뻗어나갈 열차길이 뚫려도 그들은 여전히 북한은 민족이 아닌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의 역사 인식은 딱 거기까지다. 민족에 대한 미래 보다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이 더 중요할 뿐이다. 신자유주의를 통한 강자독식 구조나 강요된 미국식 체제도 상관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 미국이 하면 정의고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민중들이 최루탄에 맞아 피흘리며 민주와 자유라는 가치를 위해 희생할 때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지 않다. 자본이 제일인 나라 체제에서 강자추종은 그들에게 미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중의 피로 바로세운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는 반역은 꾀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바로 5년 전 6월13일, 14살 미선·효순이는 54짜리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장갑차 조종사였던 마크워커는 무죄선고를 받고 미국서 활보하고 있다. 미국 변호사와 미국 검사, 미국 판사, 미국 배심원에 의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단순한 동정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주권이 있으나 없는 것과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백성의 서러움 때문이다. 그래서 6월에 휘날리는 서울 시청광장의 성조기를 본다는 것은 서러움과 분노를 넘어 아픔 그 자체이다.
/이 주 현(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