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표 상단 13명 가운데 8명, 그러나 챔피언이 나오지 않아 서운한 '한류돌풍'이었다.

   2일(이하 한국시간)노스캐롤라이나주 서던파인스의 파인니들스골프장(파71.6천616야드)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 순위표 윗줄은 온통 태극기로 장식됐다.

   브라질 교포 안젤라 박(19)이 공동 2위, 박세리(30.CJ)와 박인비(19)가 공동 4위, 신지애(19.하이마트)는 6위, 이지영(22.하이마트) 7위, 그리고 김미현(30.CJ)과 장정(27.기업은행)이 공동 8위를 차지하고 배경은(22.CJ)이 공동 10위에 턱걸이하는 등 모두 8명이 '톱 10'에 올랐다.

   사흘 내내 리더보드 상단을 오르내리던 '코리언 시스터스'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US여자오픈의 주역이었으나 우승 트로피는 통산 9승을 올린 베테랑 크리스티 커(미국)에게 넘겨줘 '화룡점정'은 이루지 못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선수는 1998년 이 대회에서 맨발 투혼으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해 IMF사태에 신음하던 국민에게 희망을 안겼던 박세리였다.

   버디 4개와 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 68타를 때린 박세리는 4라운드 합계 2언더파 282타로 공동 4위까지 순위를 끌어 올렸다.

   3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연속 3타씩을 줄인 박세리는 시즌 다섯번째 '톱 10'을 US여자오픈에서 이뤄내 슬럼프 탈출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렸다.

   박세리는 "이렇게 어려운 코스에서 3, 4라운드를 모두 언더파 스코어를 낼 수 있어 기쁘다"면서 "다시 한번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루고 싶다"고 자신이 넘쳤다.

   사흘 내내 우승을 다퉜던 안젤라 박의 성과도 눈부셨다. 3라운드에서 3타를 잃어버렸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1타를 줄여 우승자 커에 2타 뒤진 준우승(3언더파 281타)을 차지한 안젤라 박은 27만1천달러의 상금을 받아 상금랭킹 10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공동 5위에 이어 메이저대회에서 연속 '톱 5'에 오른 안젤라 박은 걸출한 동갑내기 신인들 틈에서 반짝 활약이 아닌 꾸준한 성적을 이어가며 신인왕 수상을 사실상 굳혔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2002년 US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를 제패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박인비는 2타를 줄이면서 데뷔 이후 첫 '톱 10'을 메이저대회에서 달성했다.

   우승까지 바라봤던 신지애는 3오버파 74타를 치는 부진 끝에 6위(이븐파 284타)로 내려 앉았지만 시즌 첫 메이저대회 나비스코챔피언십 공동 15위를 뛰어넘어 자신이 세운 목표를 거뜬히 일궈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선수를 가려내기 위해 까다롭게 세팅한 코스에서 신지애는 드라이브샷 비거리 9위(259.25야드), 페어웨이 안착률 공동 3위(82%), 그린 적중률 공동 8위(68%), 그리고 퍼팅 개수 39위(1.69개)의 수준급 실력을 과시해 미국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 KB국민은행스타투어 3차대회를 마치자마자 대회 이틀 전에 대회장으로 달려가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낸 신지애는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4일 개막하는 코리아아트빌리지오픈에서 시즌 5승에 도전한다.

   이지영은 이븐파 71타로 잘 버텨 최종 합계 1오버파 285타로 '톱 10'에 합류했고 1타를 줄인 김미현과 2타를 잃은 장정도 합계 2오버파 287타로 공동 8위에 올랐다.

   배경은은 1언더파 70타를 때려 3명의 공동 10위(3오버파 287타)에 합류했다.

   기대와 달리 우승 경쟁은 중반부터 커와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의 맞대결 양상으로 흘렀다.

   선두 커에 1타차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신지애가 체력 부담 탓인지 아이언샷과 퍼팅이 흔들리며 버디를 하나도 잡아내지 못하고 우승 다툼에서 떨어져 나왔다.

   신지애와 함께 공동 2위였던 모건 프레셀(미국)도 초반부터 보기를 쏟아내며 선두권에서 밀려났고 커에 2타 뒤진 채 4라운드에 돌입한 안젤라 박 역시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올해 11년째 투어를 뛰고 있는 노련한 커는 차분하게 타수를 지키는 전략으로 선두를 고수했고 한때 공동 선두로 올라선 오초아가 자멸한 틈을 타 손쉽게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커는 오초아와 공동선두를 달리던 14번홀(파4)에서 5m 짜리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1타차 단독 선두로 올라선 뒤 17번홀(파4)에서 1타를 잃은 오초아를 2타차로 따돌렸다.

   3라운드에서 66타를 뿜어내 선두를 꿰찬 데 이어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2개와 보기 1개를 묶어 1언더파 70타를 친 커는 최종합계 5언더파 279타로 통산 열번째 우승을 생애 첫 메이저대회 제패로 장식했다.

   특히 커는 1995년 17세의 아마추어 선수로 US여자오픈에 출전한 이후 41차례 메이저대회에 나섰지만 한번도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한을 풀었다.

   시즌 첫 우승과 함께 56만달러를 받은 커는 "꿈이 이뤄졌다"면서 감격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메이저 우승컵없는 반쪽 여왕'이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던 세계랭킹 1위 오초아는 17번홀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트린 뒤 페어웨이우드로 그린을 노리는 무리수를 두다 스스로 무너졌다.

   이븐파 71타를 친 오초아는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아낸 안젤라 박에게 공동 준우승까지 허용하며 '메이저 무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5세의 오초아는 "나는 젊다. 아직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할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US여자오픈에서 항상 별도로 상을 주는 '최우수 아마추어 선수'도 '코리언 시스터스'의 몫이었다.

   한국 국가대표 주장인 송민영(18.대전국제고)과 미국 아마추어골프의 강자 제니 리(19)가 나란히 10오버파 294타로 공동 39위에 올라 아마추어 가운데 최고 성적을 냈다.

   한편 '이븐파도 어려울 것'이라는 엄포와 달리 우승자 커를 비롯해 5명이 언더파 성적으로 4라운드를 마쳤다.

   대회 기간 내린 비 덕에 그린이 부드러워진데다 예상과 달리 러프의 강도가 약해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지만 같은 코스에서 열렸던 1996년 대회(8언더파)와 2001년 대회(7언더파)에 비해 우승 스코어가 나빠졌고 출전 선수 평균 스코어는 74.549타로 높게 측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