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논설위원)
희망보다는 걱정이 많은 요즘이다. 때걱정 거처걱정 없는 분이야 그래도 견딜만하지만, 장대비 소식에 매년 되풀이 해 물폭탄을 맞아 온 민초들은 걱정이다. 이들의 걱정은, 고쳤으니 올해는 괜찮겠지 하는 믿음에서 부터 시작한다. 여지없이 깨진 믿음이 한두번이 아닌 터라 마음 한구석엔 스스로 구난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종국에는 특별히 챙길 것도 없다는 데서 걱정을 넘어 또다시 믿음을 가져 본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면 대선이 6개월 여 남았다는 데서 불안함이 혓끝에 돋는다. 대선 주자들은 당연히 민생을 얘기하고 경제를 걱정할 것이며, 현 정권은 치적을 내세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선 승리를 위한 허세로 인해 재난우려시설(고난한 삶)을 살피고 정비하는 데는 시선이 가지 않아, 무너진 하천을 다시 고치는 등 눈에 보여 하던 일만 열심히 하는(목전지계) 것이 전부일 게 뻔하다. 민생은 물건너간 한해가 될 것이고, 다음 정권은 남의 탓하다 세월을 보내는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이 현실로 여겨져 왔다.

이는 '네 탓'이 아닌 '내 탓이오'를 외칠 줄 아는 공동체적 열린 마음이 없어서 벌어지는 '민생의 형극(荊棘)'이다. 이스라엘 철학자 '마틴 부버'는 '너'와 '나', 즉 '우리'를 공동체로 정의하고 있다. 공동체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민족의 발전과 번영이 보장되며, 책임과 의무는 '열린 마음'의 바탕위에서 비롯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공동체(끼리)는 있으나 열린마음이 없는 듯 하다. 공동체만 있으니 민생이 고단하고 나라가 더 높이 날 수 없음은 필연이다.

선조들은 민생 구휼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운영한 데서 공동체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곡(官穀)의 진급(賑給), 사궁구휼(四窮救恤), 조조감면(租調減免), 대곡자모구면(貸穀子母俱免)이 그 것이며, '백성이 영농에 힘쓰도록 권장하고 각종 재해에 대해 사전·사후 방비하는 역농방재(力農防災)'사업은 금과옥조라 할 수 있다. 전정·군정·환곡 등의 제도는 관리의 문제로 후에 백성의 고혈을 짜는 제도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선조들의 백성을 위한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에 와서는 민생은 없고 사생결단의 당파싸움 만을 옮겨 논 듯 '네 탓'의 이전투구 논쟁만이 끝간 데를 모르니 걱정이다. 토정 이지함의 일화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올지 궁금하다. 토정선생이 포천현감으로 부임하던 첫날, 아전이 음식상을 올렸다. 선생은 음식을 살피더니 젓가락도 대지 않고 "먹을 게 없구나"하고 말했다. 아전은 "고을에 특산품이 없어 반찬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며 이전과는 비교가 안되는 진수성찬을 차려냈다. 이를 들여다 본 선생이 다시 "먹을 게 없구나"고 같은 말을 하자 아전이 두려워 어찌할 바 몰라했다. 그 때 선생이 "백성이 민생고에 허덕이며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수령인 내가 어찌 밥상에서 편히 식사할 수 있겠느냐. 앞으로는 잡곡밥 한그릇에 검은 시래깃국 한그릇만 준비하도록 하라"고 호통을 쳤다. 이후 아전은 밥상을 쓰지 않고 밥에 국 한그릇만을 선생이 쓰던 삿갓 상자에 담아 올렸다고 한다.

장마가 세를 불릴 태세다. 태풍이 가세하면 그 위세는 예측이 안된다. 정치권이 대선에 몰입해 이해타산만을 따질 때가 아닐 듯 싶다. 네탓 공방과 낯간지러운 민생공약은 잠시 쉬었다 하고,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민생만 살펴도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일 터인 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 최근 일본진출 100호 홈런을 친 이승엽이 자팀이 연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4번타자로서 제역할을 못한 내탓이라며 자조했다고 한다. 현 위치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열린마음으로 사물을 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그래야 걱정 아닌 희망이 보이고 민생이 편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