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다시 살펴보면 대선이 6개월 여 남았다는 데서 불안함이 혓끝에 돋는다. 대선 주자들은 당연히 민생을 얘기하고 경제를 걱정할 것이며, 현 정권은 치적을 내세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선 승리를 위한 허세로 인해 재난우려시설(고난한 삶)을 살피고 정비하는 데는 시선이 가지 않아, 무너진 하천을 다시 고치는 등 눈에 보여 하던 일만 열심히 하는(목전지계) 것이 전부일 게 뻔하다. 민생은 물건너간 한해가 될 것이고, 다음 정권은 남의 탓하다 세월을 보내는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이 현실로 여겨져 왔다.
이는 '네 탓'이 아닌 '내 탓이오'를 외칠 줄 아는 공동체적 열린 마음이 없어서 벌어지는 '민생의 형극(荊棘)'이다. 이스라엘 철학자 '마틴 부버'는 '너'와 '나', 즉 '우리'를 공동체로 정의하고 있다. 공동체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민족의 발전과 번영이 보장되며, 책임과 의무는 '열린 마음'의 바탕위에서 비롯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공동체(끼리)는 있으나 열린마음이 없는 듯 하다. 공동체만 있으니 민생이 고단하고 나라가 더 높이 날 수 없음은 필연이다.
선조들은 민생 구휼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운영한 데서 공동체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곡(官穀)의 진급(賑給), 사궁구휼(四窮救恤), 조조감면(租調減免), 대곡자모구면(貸穀子母俱免)이 그 것이며, '백성이 영농에 힘쓰도록 권장하고 각종 재해에 대해 사전·사후 방비하는 역농방재(力農防災)'사업은 금과옥조라 할 수 있다. 전정·군정·환곡 등의 제도는 관리의 문제로 후에 백성의 고혈을 짜는 제도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선조들의 백성을 위한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에 와서는 민생은 없고 사생결단의 당파싸움 만을 옮겨 논 듯 '네 탓'의 이전투구 논쟁만이 끝간 데를 모르니 걱정이다. 토정 이지함의 일화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올지 궁금하다. 토정선생이 포천현감으로 부임하던 첫날, 아전이 음식상을 올렸다. 선생은 음식을 살피더니 젓가락도 대지 않고 "먹을 게 없구나"하고 말했다. 아전은 "고을에 특산품이 없어 반찬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며 이전과는 비교가 안되는 진수성찬을 차려냈다. 이를 들여다 본 선생이 다시 "먹을 게 없구나"고 같은 말을 하자 아전이 두려워 어찌할 바 몰라했다. 그 때 선생이 "백성이 민생고에 허덕이며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수령인 내가 어찌 밥상에서 편히 식사할 수 있겠느냐. 앞으로는 잡곡밥 한그릇에 검은 시래깃국 한그릇만 준비하도록 하라"고 호통을 쳤다. 이후 아전은 밥상을 쓰지 않고 밥에 국 한그릇만을 선생이 쓰던 삿갓 상자에 담아 올렸다고 한다.
장마가 세를 불릴 태세다. 태풍이 가세하면 그 위세는 예측이 안된다. 정치권이 대선에 몰입해 이해타산만을 따질 때가 아닐 듯 싶다. 네탓 공방과 낯간지러운 민생공약은 잠시 쉬었다 하고,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민생만 살펴도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일 터인 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 최근 일본진출 100호 홈런을 친 이승엽이 자팀이 연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4번타자로서 제역할을 못한 내탓이라며 자조했다고 한다. 현 위치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열린마음으로 사물을 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그래야 걱정 아닌 희망이 보이고 민생이 편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