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정보망과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자국내에선 어떤 평가를 받는지 몰라도, 국외에선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는 조직이다. 무엇보다 웬만한 불미스런 사건만 터졌다 하면 으레 그 배후세력으로 지목되곤 했기 때문이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우선 1961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고자 반카스트로 쿠바인들을 조종, 피그만을 침공했다가 실패해 국제적 망신을 당했던 건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그 전해인 1960년 CIA는 이미 마피아조직을 이용, 카스트로 암살을 획책했다가 실패했다고도 한다. 최근 비밀 해제된 CIA 기밀문서를 통해 공식 확인된 내용이다. 뒤늦게 밝혀진 건 이 뿐이 아니다. 콩고의 독립운동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와 도미니카 공화국 독재자 라파엘 트루질로도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러니 1963년 베트남의 고딘디엠 대통령이 피살된 일이나, 1970년 캄보디아에 쿠데타가 일어나 론놀정권이 들어섰던 일, 심지어 1979년 한국의 10·26사태마저 CIA 작품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나돈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싶다. 한마디로 국제 테러의 본산은 다름아닌 미국이란 말까지 나올만 하다 하겠다. 진위 여부야 확인할 길 없지만, 여하튼 미국으로선 꽤나 난처할 법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든다. "그같은 미국이 어떻게 국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하고. 하긴 '남이 저지르면 불륜이요,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차마 그런 건 결코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지만 말이다. 어떻든 다음과 같은 카스트로의 말은 음미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날의 과오를 지금 털어놨다 해서 감동할 것까진 없다. 마치 개과천선을 가장한 제스처처럼 보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