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건영 (논설실장)
웬만한 이들은 으레 한 두개씩 지녔음직한 신용카드. 이의 등장은 아주 우연한 일에서 비롯됐다.

시카고 출신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어느 날 식당에서 음식값을 치르려다 크게 당황했다. 지갑 속에 현금이 없었던 것이다. 즉시 집에 연락해 돈을 가져왔지만, 그때 경험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게 바로 사상 첫 신용카드 '다이너스 클럽'이다.

1950년 출발한 다이너스 클럽은 처음엔 주로 식당에서 사용됐다. 그러나 카드 한 장으로 거추장스런 현금의 불편을 덜 수 있음을 알게되자 차츰 그 대상이 넓어졌다. 8년 뒤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신용카드 2호를 기록했고, 1966년 매스터 차지사가 영업을 개시, 본격적인 신용카드 시대를 열게 된다. 우리 나라도 1978년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선보인 이래 숱한 카드회사가 성업 중이다.

신용카드는 편리한 점이 많다. 현금없이 물품을 구입할 수 있고 현금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세금이나 벌금까지 신용카드로 낼 수 있다.

게다가 거래 내용을 투명하게 해 탈세 방지에도 한 몫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않다. 현금없이 거래가 가능하다 보니 지나친 소비를 자극하게 되고, 툭하면 현금 서비스를 받게돼 한 순간에 빚쟁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TV드라마 '쩐의 전쟁'에서도 보았듯이, 카드 빚이 힘에 부치자 악덕 사채를 쓰게 되고, 사채업자에 시달리다 못해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진다. 사채로 전환된 빚에 덜미잡혀 장기매매나 인신매매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 카드사들의 회원 유치 경쟁이 재연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금융감독원이 규제했던 길거리 모집이 슬그머니 재등장했다. 사은품 공세까지 펼친다. 인터넷시대답게 온라인상의 회원 모집도 기승을 부린다. 당연히 복수카드 소지자가 부쩍 늘었다. 4개 이상의 카드 소지자가 자그마치 752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복수카드는 대출이 많은 이들의 돌려막기에 쓰여 카드사와 가계 부실을 함께 불러오기 십상이다.

카드사용 또한 급증한 건 물론이다. 사용 건수가 사상 처음으로 하루 평균 1천만 건을 넘어섰다.

월간 사용액은 넉 달째 20조원을 웃돌고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월별 사용액 20조원을 넘어선 적이 단 한 번 뿐이었던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를 최근의 소비 회복세 영향으로 보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글쎄, 각 가정의 살림살이가 과연 그만큼 나아졌을까.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의 '가계부채 위험도 진단'이란 보고서가 생각난다. 이 보고서는 "우리 나라 가계신용 위험도가 신용카드 버블 붕괴 당시의 수준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또 가계부채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 스페인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고 했다.

전체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무려 671조원을 기록했다고도 했다. 이런 터에 가계 살림이 나아졌다는 건 상상이 안된다.

또 다시 카드대란을 걱정할 만큼 카드 남용이 빚 급증을 부채질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아직 없는 모양이다. 조만간 신용불량자와 개인파산자가 지난 2003년 때처럼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카드회원 불법 모집이라도 막아줬으면 좋겠는데 당국은 그마저도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사은품 같은 게 기승을 부리는 걸 보면….

그렇다고 정부 당국만 탓할 수도 없다. 무절제한 카드사용이 국가 재정마저 뒤흔들게 하긴 한다. 하지만 나라 재정도 아닌 각 가정의 빚까지 국가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일 게다.

더구나 국가 또한 무려 300조원의 빚을 지고 있는 형편이다.

아무리 살림살이가 어렵더라도 스스로 카드사용을 절제할 수밖에 없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건 그저 옛말일 뿐이다. 신용불량자 파산자가 되고나면 이미 '때는 늦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