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자 (시인)
'경기도 문화의 21세기를 그리다'.

경기문화재단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있었다. 재단 창립 10돌에 21세기의 경기도 문화지형도를 그려 보이겠다니, 많은 사람이 모였다. 재단도 신경을 꽤 쓴 기획이라 경기도 문화예술 관련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했다.

재단의 의도를 제대로 짚은 발제와 토론은 객석의 관심을 끌었다. 경기도의 문화적 정체성이니 새로운 문화지형도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촉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낯익고 추상적이거나 경기도와 동떨어진 내용이 많고, 경기도에 맞는 진단과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부족하다는 게 중평이다. 이는 무엇보다 발표자나 토론자가 서울 생활권자인 데서 연유하는 것 같다. 이 지역에서 살 비비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적고, 상황 파악에도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경기문화재단은 그동안 '서울문화재단' 혹은 '한국문화재단'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주 불러일으켰다. 재단의 구성원 역시 경기도민 아닌 사람이 더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사정은 재단만의 문제가 아니고, 경기도에는 무늬만 경기도민인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긴 하다. 의식상 서울시민이 경기도를 임시거처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동이 갈수록 잦아지는 시대적 특성과 수도권이면서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의 지형적 특성에 기인한다. 그래서 1천200만명 중에 진정한 경기도민은 500만명 정도라는 추정이 나오고, 유목민처럼 끊임없이 흔들리는 게 경기도의 정체성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온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경기문화재단이 여느 기업체와 같은 입장일 수는 없다. 경기문화예술에 대한 '진흥'과 '지원'으로 문화예술의 견인차 역할을 자임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문화예술 '진흥'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할 곳이고, 경기문화예술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서도 더 많은 모색을 해야 할 곳이다. 그래서 중앙의 잘 나가는 예술인들을 불러다 '그들만의 리그'를 재현하면 빈축을 사는 것이다. 설령 경기도의 예술인이 그런 고수들만 못하더라도 '지금 이곳'의 문제 진단과 방향 모색에 힘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곳의 문화예술을 이곳에 맞게 발전시키며 향유하는 길일 터이다.

다른 문화재단도 엇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듯하다. 인천문화재단이나 도내 부천과 성남 등의 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의 창달에 힘쓰지만, 진정한 지역성을 구현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중앙의 유명 예술인 모시기에 따라 소외를 곱씹는 지역의 예술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모두가 서울을 향해 해바라기하는 판국에 지역의 이름을 걸고 출발한 문화재단도 그리한다면, 문화 다양성은 더욱 급속히 실종될 것이다. 물론 그 방면의 최고를 키우고 그런 인재 양성을 통해 문화적 자양과 경쟁력을 돋워 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소위 선택과 집중이라는 자본주의적 효율성이 지역의 예술인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

지역의 문화예술은 조금 촌스럽고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바로 지역적 특성이고, 문화적 다양성을 낳는 힘이다. 각 지역의 문화재단과 문화정책 관련자들은 이런 지역성을 끌어안고 나아가야 한다. 자기 지역 예술인을 사장시키며 계속 중앙에만 발을 맞춘다면, 지역의 고유성이 사라질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은 우리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야 한다. 각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예술이 꽃필 때, 문화 다양성도 꽃피게 된다. 그 속에서 공유와 향유도 나오게 된다.

/정수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