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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곽순환도로 수리터널로 인해 끊어진 수리산 마루금
수리산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안성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문수산에 이르는 한남정맥의 정중앙이다. 태을봉·수암봉·슬기봉·감태봉 등 봉우리들을 이은 모습이 흡사 독수리와 같아서 수리산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한강 남쪽에서 서울을 지키고 있는 이 수리산의 정맥은 고속화도로 및 수암터널 등 8개의 터널로 인해 단절됐다. 정중앙이 끊기고 뚫린 수리산 정맥엔 또 한 번의 메스가 기다리고 있다. 곧 수원~광명 간 고속도로가 건설될 예정이기 때문.

지난 7일 다섯 번째 한남정맥 탐사는 네 번째 탐사가 끝난 성주산부터 시작할 수 없었다. 성주산부터 양지산을 지나 봉재산, 운흥산까지의 마루금(산등성이)은 외곽순환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 수인산업도로에 막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이 구간에선 제3경인고속도로 공사도 한창이었다. 탐사단은 아쉽지만 목감사거리부터 다섯 번째 탐사에 돌입했다.

탐사일정 7월 7일:목감사거리~수리산 수암봉~수리산 슬기봉~용진사, 8일:산본천(군포시 초막골), 수암천(안양시 박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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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길이 뜸한 마루금
목감사거리에서 출발한 탐사단은 도로를 따라 30분 정도 걸어 원목감 마을을 지나서야 마루금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출발지점부터 방치된 쓰레기 더미는 탐사단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소파 등 각종 생활쓰레기와 낡은 농기계까지 널브러진 이곳이 수리산의 시작점이란 게 탐사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루금에 들어선 뒤부터 334.7 봉우리까지 2시간30분가량의 산길은 등산객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라 매우 험했다.

덩굴진 수풀을 헤치며 마루금을 따라 걷다 바닥에 묻힌 큰 그물을 발견했다. 이종대(45) 숙박·레저잡지사 편집부장은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일수록 뱀이 많이 다닌다"며 "뱀을 잡기 위해 이런 그물을 바닥에 묻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조그만 계곡이 나타났다. 탐사단원들 사이에서 "길을 잘 못 들었다"란 탄식이 터져나왔다. 장영록(44) 인천대 교수는 "계곡을 만났다는 건 마루금을 잃었다는 의미"라며 "마루금은 산의 가장 높은 부분을 연결하고, 계곡은 산 아래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암봉에서 내려다본 마루금
334.7 봉우리를 지나고부턴 등산로와 마루금이 겹쳤다. 마루금을 따라 걷는 등산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참 걸은 뒤 수리산 수암봉에 도착했다. 수암봉에서 내려다본 마루금은 정중앙이 푹 파인 것처럼 보였다. 마루금 중앙 좌우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수암터널과 수리터널이 길게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정은(29·여) 인천녹색연합 간사는 "인간의 편리 추구를 위해 마루금의 중앙이 터널로 인해 끊어진 모습"이라며 "이것도 모자라 수리산에 또 다른 길이 뚫릴 예정"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끝없이 펼쳐진 군부대 철조망
수암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탐사단은 슬기봉으로 향했다. 슬기봉을 향해 마루금을 따라 걷는 길은 군부대 철조망과 함께였다.

목감사거리~수리산 334.7 봉우리~수암봉~수리산 451 봉우리~슬기봉~용진사까지 약 5.5㎞ 거리의 마루금 중 군부대 철조망이 없는 곳은 2.5㎞에 불과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걷자 마치 전방 GOP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정구(34) 인천녹색연합 국장은 "수리산뿐 아니라 한남정맥 대부분의 마루금엔 군부대가 있다"며 "마루금이 군 작전상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조망도 철조망이지만 곳곳에 훈련을 위해 파놓은 참호에는 군용 음료캔, 버려진 방독면 등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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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아파트단지, 그 어울리지 않는 풍경

슬기봉에 도착했다. 슬기봉에서 조금 아래인 해발 400 지점에선 안양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발 아래 펼쳐진 대규모 아파트단지들은 '이곳이 과연 산속인가'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들었다. 황재남(40·여) 안양YMCA 팀장은 "눈앞에 보이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예전에 모두 수리산이었다"며 "산 위에서 보는 아파트 단지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자연은 살아 숨쉰다
수리산 일대는 끊긴 마루금과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다행히 살아 숨쉬는 자연도 남아있었다.

탐사단은 영지버섯 등 각종 버섯도 많이 발견했고, 사슴벌레와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황 팀장은 "수리산엔 꿩의바람꽃, 흰털괭이눈, 노루귀 등 환경부에서 지정한 특정식물종이 제법 살고 있다"며 "환경파괴 속에서도 자연은 숨쉬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말라만 가는 하천
지난 8일 수리산에서 흘러내려온 계곡물을 따라갔다. 군포 초막골 계곡은 자연의 깨끗함을 그대로 유지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반면 복개구간인 수리고등학교~금정역까지 약 8㎞가 끝나자 산본천의 물은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더러운 물로 변해버렸다.안양 박달동의 수암천은 아예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수리산에서 안양으로 흐르는 계곡에는 물장난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의 물이 흘렀지만 안양9동 병목안사거리부터 물은 점점 줄어 안양예고 앞 수암천에 다다르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장 국장은 "수암천의 건초화 현상은 깊이있게 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며 "아마 일대에 들어선 아파트와 수리산 계곡에 산사태 방지용으로 설치된 사방댐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수리산 계곡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던 박모(38·여)씨는 "지금은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어 좋지만 만약 이 계곡마저 말라버린다면 끔찍할 것 같다"며 "인간이 계속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남정맥 시민탐사단 참가자
인천녹색연합 생태도시부 장정구(34) 국장·신정은(29·여) 간사·이장수(44) 운영위원·이성호(31) 회원, 인천대학교 물리학과 장영록(44) 교수, 안양YMCA 황재남(40·여) 환경교육팀장, 이종대(45) 숙박·레저잡지사 편집부장, 이솔(11)·이한(6) 어린이, 경인일보 사회부 추성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