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축구팀이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보다 앞섰다?'

1901년에 인천 강화에 근대 축구팀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문헌과 사진이 발견된 것은 한국 축구사는 물론 근대사 연구에서도 의미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근대 축구와 관련된 기록 중 이번에 발견된 사진과 문헌보다 앞선 사료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영국 성공회에서 발행하는 'The Morning Calm'에 게재된 강화 축구팀 소개 글(박스 부분). 강화학당 축구팀이 G A 브라이들 목사에게 수년간 훈련을 받았고 선수들은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선수들이 좀더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소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인천 강화 문화원 제공
대한축구협회(KFA)에 따르면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축구협회는 또 정식 축구의 보급은 1904년 서울의 관립 외국어학교에서 축구를 체육과목의 하나로 채택하면서부터, 한국 최초의 공개 축구 경기는 1905년 6월10일 서울훈련원(현재의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시합인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하에 경기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로 전해진다.

그러나 시드니 J 파커가 '모닝 컴'의 편집자에게 보낸 글의 시점은 1901년 3월21일로 지금까지 알려진 정식 축구의 보급시기보다 3년이나 앞선다.

강화 풋볼팀을 소개하는 사진 또한 대한체육구락부 회원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담은 1906년도의 사진보다 최소한 5년 전에 촬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체육구락부 회원들의 사진은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사진중 가장 오래된 축구 관련사진이다.

특히 선수들이 몇년간 훈련을 거쳤다는 내용이 글에 소개돼 있어 이 축구팀이 1890년대 후반부터 존재했음을 가늠케 해주고 있다.

다소 비약적인 비유이지만 스페인 1부리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1902년 창단)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1905년 창단)보다 앞서 강화에 '좀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한' 만만찮은 실력의 '축구클럽'이 존재했던 셈이다.

인천유나이티드FC의 한 관계자는 "1897년 창단된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경우, 거리에서 축구를 즐기던 영국, 스위스계 이민 젊은이들이 이탈리아어로 '젊음'(youth)이란 이름으로 창단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강화에 조직을 갖춘 근대 축구팀이 존재했다니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강화 축구팀의 사진과 문헌이 발견됨으로써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 스포츠 발상지로서의 입지를 다시한번 다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