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없는 힘에 이끌리듯 목과 팔, 다리가 저절로 리듬을 탔다.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기면 된다. 쑥스럽게 주위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점잖음은 이미 입장하면서 맡겨뒀기 때문이다.
27일 오후 9시30분 인천 연수구 송도유원지 대우자동차 판매부지. 8천 여 인파가 '2007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인 '빅 톱 스테이지(Big Top Stage)'로 몰려들었다.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의 첫 내한 공연은 여름 밤 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불꽃놀이로 워밍 업을 했다.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현란한 비주얼 아트는 첫곡 '노 패스 투 팔로(No Path To Follow)'부터 강렬했다. 세 개의 대형 LED에서 뿜어내는 그림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피에로 분장을 한 사람의 얼굴은 어느새 나무ㆍ호랑이ㆍ말이 됐고 눈 깜짝할 사이에 로봇으로 변신했다.
'빅 톱 스테이지'는 순식간에 성업 중인 야외 클럽이 됐다. 눈을 감고 몸을 흐느적거리는 자아도취 파, 근육질 상반신을 자랑한 고성방가 파 등 즐기는 방법도 각양각색.
말없이 몸을 흔들며 음악을 선사하던 케미컬 브라더스가 '러브 이즈 올(Love Is All)'이란 메시지 영상을 띄우자 '평화' '케미컬 브라더스'라 써진 플래카드들이 순식간에 밤 하늘을 갈랐다.
영상 분야를 공부 중이라는 이세진(28) 씨는 "영상과 사운드의 대가인 케미컬 브라더스에게 한 수 배우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며 "절로 탄성이 나온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밤 11시30분께 케미컬 브라더스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열리는 '그루브 세션(Groove Session)' 무대로 옮겨갔다.
△비가 오지 않아 고마워
폭우가 관건이었다. 지난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첫날부터 비 피해가 심했다. 행사장은 온통 진흙탕이었고 세면대, 화장실 등 부대 시설은 엉망이 됐다. 관객의 참여도 예상보다 저조해 적자 폭도 컸다.
올해는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천시에 대비해 1억 원을 투입, 자갈을 깔고 땅을 단단하게 다지는 공사를 했다. 무대와 부대 시설을 오가는 통로는 정돈됐고, 동선도 줄여 편리해졌다.
공동제작사 중 하나인 좋은콘서트 관계자는 "초대권 관행을 없앤 효과도 컸지만 좋은 날씨의 영향으로 27일 하루 현장에서 판매된 티켓만 1천장"이라며 "캠핑 촌에서 숙식하는 관객도 지난해보다 두배가 증가했다. 푸드존을 이용하기 위한 쿠폰 판매액도 1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외국인 관객도 1천명
외국인 관객도 지난해에 비해 눈에 많이 띄었다. 좋은콘서트 집계에 따르면 이들이 구입한 티켓만 1천장. 케미컬 브라더스 셔츠를 입은 캐나다 출신 조던 맥클린(33) 씨는 "한국에 파견 나온 직장인"이라며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모두 푸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신나했다. 티켓 판매 부스의 한 관계자는 "쿠바 등 한국에 있는 대사관들의 직원들도 페스티벌 현장을 찾았다"고 귀띔했다.
음악은 인종과 국경을 하나로 만들었다. 피부색에 관계없이 관람 중 춤을 추다 몸이 부딪히면 악수를 했고 열기가 무르익자 서로 어깨 동무를 하며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데미안 라이스, 헬로굿바이 불참
29일 '펜타포트 스테이지(Pentaport Stage)'에서 예정된 아일랜드 출신 가수 데미안 라이스와 미국 그룹 헬로굿바이의 공연이 취소됐다.
행사 관계자는 "같은 기간 열리는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과 공동으로 기획해 아티스트를 섭외했다"며 "데미안 라이스는 건강 악화로 목 상태가 좋지 않아 한국, 일본을 도는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비자를 받는 시간 부족으로 국내 록그룹 닥터코어 911이 이 무대를 대신한다"고 밝혔다.
또 "헬로굿바이의 멤버가 27일 후지 록 페스티벌 공연 이후 복통과 고열에 시달려 응급실에 실려갔다"며 "매니저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불참을 전해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