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원찬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휴가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더운 여름을 피하고자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산과 바다가 아닌 극장가로 몰리고 있다. 다이하드, 해리포터 등 외국영화와 공포영화가 여름 극장가를 휩쓸고 있지만 심형래 감독이 야심차게 제작한 '디워' 그리고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화려한 휴가'가 사람들을 극장으로 인도하고 있다.

광주에 대해 부채의식이 있던 필자도 다소 긴장감을 갖고 가까운 극장을 찾았다. 관객들이 1980년 광주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사이에 극장 안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저마다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 아래 한 점뿐인 혈육 동생 진우와 그 동생에게 세고비아 기타를 사 주고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일이 전부인 택시운전사 형 민우가 있다. 그리고 간호사인 민우의 애인 신애와 평범한 광주시민들의 일상들이 평화롭기만한 그 시절!

2007년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극장을 찾아왔듯이 1980년 그날 그들도 극장을 찾아 이주일씨가 나오는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를 보면서 한가롭던 공간에 갑자기 공수부대가 들이닥친다. 극장 안으로 도망친 학생을 곤봉으로 개 패듯이 패고 최루탄이 극장 안을 뒤덮던 날, 군부의 짐승같이 잔인한 휴가에 의해 이들의 운명이 송두리째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도청 앞은 개처럼 날뛰는 공수부대의 곤봉 밑에서 머리 터지고 살점이 터져 나갈 정도로 얻어맞은 광주 시민들의 주검이 쌓이는 핏빛 거리로 변했다.

신애가 이 현장을 목격하면서 나지막이 되뇌던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어"가 1980년 5월 그 시절을 겪은 광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되뇌었을 말이 아니었을까. 아니 이 영화가 사실이 아니라 허구에 불과한 사건을 있을 법한 시나리오로 각색한 작품이기를 바랐던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인 신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본 민우가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은 당시 고립적 광주시민들의 고요한 외침으로 들린다.

신군부가 어떻게 개입됐는지 등 다소 역사적 사실이 부족한 채 너무 대중성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과 아쉬움이 있지만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한 민중들의 평범한 인생과 꿈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최소한의 사실(fact)은 온전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광주를 잊지 말아달라"며 차를 타고 골목길을 누비며 다니던 신애와 광주시민들이 비정규직법의 희생양이 된 이랜드-뉴코아 여성노동자들로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800만을 훨씬 넘어버린 우리 시대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고 보호하겠다며 만들어졌다는 비정규직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부터 이 법을 회피하고자 70만~80만원 받고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하고 외주용역화로 전환하는 이랜드 그룹의 무책임한 행태! 이러한 자본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하고 오히려 경찰력을 동원해서 무참히 짓밟는 정부의 모습!

거대 언론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진지하고 진실된 접근은 부족하며 총구의 폭력보다 때론 잔인하고 때론 고통스러운 파업현장,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하는 모습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고립무원의 광주와 유사한 듯하다.

'일해공원'으로 대변되는 보수의 회귀와 국가폭력을 넘어 자본의 폭력이 판치는 지금 세상에서 "광주를 잊지 마세요"가 "비정규직을 잊지 마세요"로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80년 군부의 국가폭력이 2007년에 와서 자본의 폭력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유사 국가폭력이 합해져 2007년판 '화려한 휴가'가 재현되는 듯한 인상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이젠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고 소박한 휴가라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