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숙 (조각가·대안공간 눈 대표)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것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 중 하나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숫자다. 인구에 대비해 얼마나 많은 가를 생각해 봄으로써 문화유산의 가치와 이해, 교육과 향유의 비중을 살펴보는 것이다. 단순한 판가름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많은 선진국일수록 더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중요한 시사점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단지 전시관쯤이 아닌 미래유산의 보고이며, 이를 통해 온고지신, 법고창신하는 창의적 학습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 경기문화재단에서는 경기도박물관, 미술관 운영개선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 토론회는 단순한 운영개선이 아닌 도립기관을 민영화로 바꾸고자하는 경기도의 정책노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현재 경기도박물관과 미술관은 도의 사업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데 경기도는 경기도박물관과 미술관외에 백남준미술관, 실학박물관, 광주분원백자관, 광주관요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등 경기도가 설립한 거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을 경기문화재단 산하 조직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구의 박물관, 미술관이 법인 체제임을 감안하면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닌 것 같지만, 경기도의 갑작스런 정책변화는 도민과 예술가들을 짐짓 당혹스럽게 하는 면이 없지 않다.

도가 밝힌 통합 원인은 총액인건비제도 시행에 따른 조직확대 어려움, 예산, 조직, 인사, 기획의 자율성 부족, 수요자에서 공급자 중심의 사업추진으로 변화 미약 등을 내세우지만, 핵심은 '경영효율성'으로 보인다. 즉, 막대한 예산에 비해 효율성이 낮다는 지적인데,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도는 새로운 법인신설은 낭비적 요소가 많아 경기문화재단에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성과관리를 통해 관리하겠다고 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독립적 통합법인이 아닌 문화재단 산하조직 통폐합은 도가 추진하려는 경영효율성의 효과를 과연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문화재단의 전문성을 어디서 찾는지도 의문이다. 문화재단은 지금까지 예술가 지원을 위한 기구로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과는 하등의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

문화재단 전문가를 박물관, 미술관 전문가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도의 인식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보다 먼저 CEO체제를 경험했던 서구의 박물관, 미술관은 사회의 기부문화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기금확보가 불러들인 박물관, 미술관의 '상업화'를 가장 경계했다는 점을 상기할 일이다. 선진국은 박물관, 미술관이 법인임에도 각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박물관, 미술관의 공익성 때문이다.

경기도미술관은 개관한지 이제 1년도 되지 않았다. 미술관이 자칫 전시관으로 전락해 경영효율에 의한 수익구조를 중심에 둔다면, 공공성과 공익성은 어디에서 올까? 경기도박물관과 미술관은 경기도의 것이다. 여기서 '경기도'는 도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라 폄훼할지 모르겠으나 분명하게 말하면, 경기도박물관과 미술관은 경기도민의 세금으로 지은 경기도민의 박물관이요, 미술관이란 얘기다. 경기도는 미래세대를 위해 현존하는 경기도의 중요한 유물과 창의적 생산물을 수집 소장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한 교육과 전시를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역할은 경영의 효율성(수익구조로서)을 떠난 비영리적 활동이며 무엇보다 공공의 목적인 것이다. 통합법인이 요원한 상황에서 문화재단으로의 조직통합이 불러올 이러한 위험요소는 일정기간 잠복기를 거쳐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