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을 승리로 이끈 다음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영국의 처칠 수상, 그는 유머리스트로서도 이름이 높다. 그가 낸시 에스터라는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과 벌인 설전은 들어볼 만하다.
낸시; 당신이 만일 내 남편이라면 당신의 음료수 잔에 독을 넣고 말겠소.
처칠; 그래요. 만일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독을 마셔버리겠소.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 언제라도 한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일각이라도 늦게 오기를 빌고 있을 따름이다."
이미 정치 유머의 고전이 되다시피 한 또 하나의 이야기도 역시 영국산. 수의사 출신의 한 의원이 연설을 하고 있는 중에 반대당 의원이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당신은 수의사라면서?" 그러자 이 수의사 의원 왈, "그렇소, 당신 어디 아프시오? 진찰해드릴까요?"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 정치판에는 음해와 막말이 횡행한다. 상대정당과의 본선도 아닌 집안끼리의 예선 리그에서 저렇게 치고받고 해서야 패자가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를 도와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심지어 당 대표가 "사생결단의 비방은 말라"고 호소한다. 어떤 일간지의 '李 갈리게, 朴 터지게'라는 기사 제목이 그럴 듯하게 보였다. 1차 방정식밖에 모르는 말솜씨들이다. 직구만 알고 커브나 서브마린의 위력과 묘미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미테랑 대통령과 시라크 총리가 각기 사회당과 보수당을 이끌고 기형적인 동거정부를 꾸려가고 있던 1990년대의 이야기. 미테랑이 이런 자화자찬을 하였다.
"과거에는 출산율의 저하로 고민했는데,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한 후에는 출산율도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 이 말을 들은 보수파의 시라크 총리가 아주 점잖게 반박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출산율 상승은 사회주의의 성과라기보다는 프랑스 국민 개개인의 노력의 성과라는 것을 대통령께서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개개인의 노력'이란 표현에 주목해야 진미를 알 수 있는 말이다.)
도대체 한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가겠다는 인물이라면, 식견과 도량, 신념과 교양, 품격과 신뢰감 등 여러 면에서 무언가 남다른 데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검증 평가할 수 있는 내신과 수능성적이 다름 아닌 그 자신의 말과 행실에 의해서 채점된다. 그런데 적어도 말의 품격에 관한 한 우리 정치인들은 낙제 근처의 수준이다. 그렇지 않은 극소수를 예우하는 뜻에서 '대부분'이라는 말을 붙여 주자.
나는 그들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들의 언행에 오염되어 사고와 언어생활에서 건강성을 잃어가는 국민들을 위해서 이런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공직 선거 후보자(그 지망자 포함)들에게 일정 기간 언어교육을 시킨다. 둘째, 선거과정이나 의정생활에서의 발언을 개별적으로 모니터링하여 반칙을 통고하거나 공개한다. 셋째, 학교교육 및 사회교육에서 민주시민에 합당한 언어교육과정을 밟게 한다. 넷째, 저질 발언을 상습적으로 일삼거나 음해성 발언으로 한몫 보려는 후보를 가려내어 정계에서 도태시킨다.
한 야당의 유력한 경선후보들 사이에 여론조사 설문사항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누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와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를 놓고 서로 막무가내다. 당에서 내놓은 절충안 "…누구를 뽑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는 양편에서 모두 손사래를 친다. 자기네 이해에 직결되는 표현에는 이처럼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이 희화적이다. 평소 상대방에 대해서 말할 때도 이처럼 한 마디 한 대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후보야말로 민주사회에 합당한 지도자로서 알맞는다고 할 것이다.
/한승헌(변호사·법무법인 광장)
'직구'만 아는 정치인의 언어수준
입력 2007-08-09 2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7-08-10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댓글 0개
지금 첫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지금 첫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