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인호 (논설위원)
요즘 매일 아침마다 폭염의 전주곡처럼 매미 울음소리가 아주 시끄럽다. 여기저기서 서로 주고 받으며 그들만의 소리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날씨가 무더우면 매미들이 더욱 우굴거린다고 한다. 꼭 7년 주기로 매미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고 하니 오묘한 자연의 섭리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이런 매미의 삶은 놀랍다. 유충의 몸으로 땅밑에서 허물벗고 다시 나길 되풀이하는 세월이 대략 5~7년이지만 성충으로 자라 지상에 나오면 고작 2~3주, 길어봤자 한 달 남짓 살다 생을 마친다고 한다. 인고의 길고 긴 시간을 보내고도 짧은 삶을 사는 탓이어서 그런지 그 소리는 오랜 시련을 이겨낸 생명의 찬가로 들릴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매미 울음소리는 기분이 좋을 때 들으면 마치 폭포수처럼 시원하다. 한여름 무더위에 온 몸이 축 늘어지고 정신이 몽롱할 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정신을 번쩍들게 한다. 몸에 긴장감을 줘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습하고 짜증이 날 때 듣는 매미 울음소리는 영락없이 소음 그 자체이다. 특히 새벽 잠결에 듣는 소리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경고음이 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심성을 어지럽히는데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굉음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문제는 이런 소리가 우리 사회로 온통 퍼져 곳곳이 난장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제계 쪽은 더욱 심각하다. 정체불명의 경제위기설이 난무하는가 하면 뜬금없는 제2 외환위기 전망까지 들린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짜 큰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달들어 충격적이고 당혹스런 일들을 적지않게 겪고 있다. 무더위는 그렇다치더라도 해외에서 밀려오는 금융시장의 거센 파고로 인해 당분간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2003년 9월 6일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의 피해는 조족지혈일 만큼이다. 지금은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다름아닌 주식과 외환 등 금융시장의 혼란상이다. 지난주 우리 금융시장은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 들었고 수백조원의 국부가 며칠새 공중으로 날아가는 참담한 모습을 목격했다. 국난이라던 외환위기 당시의 모습이 재현됐다고 보면 된다.

물론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과 앤 캐리 트레이드사태에서 비롯된 충격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신중치 못한 경고음이 기폭제가 됐다고 한다. 권오규 재경부장관의 난데없는 '제 2외환위기' 발언과 안일한 대응이 국내 금융시장을 공황상태로 몬 한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들의 무차별적인 주식매도로 달러와 엔화가 큰폭으로 올라 경제에 큰 주름을 주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권 부총리의 앤 캐리 청산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붓는 셈이 됐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이석채 청와대경제수석은 "은행이 망해도 정부는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의 권 부총리와 비슷한 코멘트를 했다. 이후 외국은행은 곧바로 한국계 은행들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이같은 파장이 갈수록 커져 외환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권 부총리나 이 전 경제수석의 발언은 경고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정말 짜증나는 매미 울음소리가 된 것이다.

또 다른 기가막힌 일도 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NLL관련 발언이다. 서해5도의 NLL선이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안보의 개념이라는 발언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영토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어서 그렇다. 이 발언 파문도 국민들에게는 새벽녘에 우는 매미 울음소리보다 더 심한 소음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이달들어 불쾌한 매미 울음소리에 시달려 지겹기까지 하다. 책임있는 관료들의 이같은 경솔한 발언이 국가와 국민에게 큰 충격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입증한 셈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슬기롭게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이들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들의 지탄을 면키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점을 꼭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