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근대화는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오직 서구화만을 목표로 했다 할 정도다. 그들이 모든 면에서 우리 보다 훨씬 앞섰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종 물품도 서구인들이 만든 것을 으뜸으로 치게끔 됐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 산업시설이 거의 없고 물자가 턱없이 부족했을 때, 구호품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서양물품들은 우리의 혼을 완전히 빼놓다시피했다. 그동안 써오던 조잡한 물품들에 비해 겉모습부터 화려한데다 실용성 편리성도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당연히 외제부터 찾게됐다. 심지어 "거지도 서양 깡통을 좋아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은 우리도 산업화를 이뤄 웬만한 서구제품들 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질좋은 물품들을 많이 만든다. 세계 11~13위 수출국인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한국산은 세계서 알아주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그 옛날 외제 선호하던 버릇이 여태 남아있는 것일까. 해외 쇼핑여행이 줄을 잇고 덩달아 해외서의 신용카드 사용이 급증한다는 소식이다. 지난 해 해외서 연간 무려 2만달러 이상 쓴 신용카드 고객만도 3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사용건수는 자그마치 525만여건에 결제금액이 15억6천900만달러나 된다. 전년대비 각각 41%, 54% 늘어났다 한다.

최근 몇년간 국내 소비가 극히 부진,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아우성들이다. 국내에선 이처럼 지갑을 꽁꽁 닫으면서 해외만 나가면 통크게 카드들을 긁어댄다. 왜일까. 몇년 전만 해도 일본 도쿄의 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울 물가가 도쿄를 앞지른다고들 한다. 이러니 외국서 통큰이들만 탓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 전에 우리의 물가가 왜 그토록 비싸지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광범위한 특별소비세나 전근대적 유통구조 등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