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을 못 이루고'를 두어 소절 부르자 금세 그 표정이 달아났다. 2천여 관객의 기립박수는 스타탄생을 알렸다. 어릴 적에는 '왕따'를 당하며 자랐고 서른이 넘어서는 교통사고를 당해 빗장뼈를 다치고 암까지 앓는 온갖 고초를 겪고 살아온 그였다. 근근이 생계를 꾸려온 그에게 옛적의 꿈을 키우는 인생역전을 안겨준 감격의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연예계도 재능과 실력보다는 학력과 용모를 더 따진다. 숱한 군중의 우상들이 거짓 학력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문전에도 가지 않은 대학을 나왔다고 거짓말하고도 모자라는지 더러는 미국유학까지 갔다왔다고 능청을 떨었다. 무엇을 가르치는지 몰라도 대학강단에도 선단다. 상품가치를 높이려고 거짓 학력으로 포장해서 생긴 소동이다.
종교계도 다를 바 없다. 도시포교의 신화를 일궜다는 어느 승려. 알만 한 사람을 아는데도 거짓 학력과 경력을 자랑해 오다 학력파동으로 들통났다. 미국에는 교육과정을 갖추지 않은 비인가 대학이 많다. 돈만 주면 학위를 준다고 해서 학위공장(diploma mill)이라고 부른다. 그런 부류에는 신학대학이 많다. 그 간판을 들고 거짓을 꾸짖으며 회개하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의외로 많을 것 같다.
그런 학위를 사서 버젓이 대학교수가 되어 행세 깨나 하다 더러 뒤탈이 났다. 어디 그들뿐이랴? 미국말고도 구공산권이나 후진국에서 박사학위를 땄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언제 그곳 언어를 배워서 공부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꽤나 알려진 인사들이 언론에 자랑해서 보도된 것만도 적지 않다.
거짓 학력, 가짜 학위를 질타하는 소리가 높다. 양심의 문제이나 출세의 발판으로 삼고 이득을 챙겼다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열병 같은 학벌숭상이 거짓 학력의 유혹에 빠지게 하지 않았는지 짚어볼 일이다. 학벌은 이 나라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거대한 토템(totem)이다. 온 나라가 주술에 걸려 목숨을 다해서라도 화려한 학력을 제단에 바치려고 몸부림친다.
이 나라의 모든 대학, 모든 학과는 서열화되어 있다. 학식이나 인품 따위는 뒷전에 밀리고 그 서열이 모든 것을 말한다. 대학입학에서 인생의 갈림길이 난다. 입시 철이면 불당이나 교회당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소리가 그 실상을 말한다. 남들이 선망하는 대학을 나오면 붉은 양탄자를 밟고 인생을 출발한다. 학연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배타적 학벌사회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월급쟁이들이 사교육비로 봉급을 몽땅 털어 넣는다. 내 자식만은 학벌사회의 희생양을 만들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이다. 그들은 이름난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출발점에도 못 서는 학벌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목도했다. 그 까닭에 소주병에 찌드는 기러기 아빠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차라리 유학을 보내서라도 학력을 세탁한다. 학벌 앞에는 인격도 없으니 거짓 학력이란 허울을 뒤집어쓰지 않나 싶다.
히딩크는 학연파괴를 통해 월드컵 8강 진출이란 신화를 창조했다. 성공의 열쇠는 학연이 아닌 실력에 따른 선수발탁이었다. 그가 한국사회를 모르니까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고출신 대통령이 두 번이나 태어났다. 그들은 누가 표를 줬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학벌숭상을 타파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