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디다 못한 서울 여자 승객 한 사람이 친구들을 대표해서 부산 여자들이 모여 앉은 쪽으로 갔다.
'그 좀 조용할 수 없을까요?' 부산 여성이 대뜸 받아서 소리쳤다. '그래, 이 칸이 말칸 니 칸이다 칸은 거가?' 서울 여자는 제 친구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저기 저 여자들 다 일본 사람이야?' 이렇게 투덜대고는 한숨을 토했다.
이건 남도 사람들이 들으면 여간 재미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 비해서 서울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못 알아듣고는 어리둥절할 게 뻔하다.
그래서 서울 여성 귀에 일본말로 들린 부산 여성의 발언을 서울 사람 알아듣기 쉽게 옮겨 보자. '그래, 이 (기차) 칸이 몽땅 네 칸이라고 말하는 건가?' 이쯤 될 테지만 그래 가지고는 흥겨운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은 눈곱만큼도 없을 것이다. 부산 여성의 발언은 짧은데도 '칸'이 자그마치 네 번이나 되풀이 되어 있다. '칸, 칸, 칸, 칸'의 반복이 신난다. '프랜치 캉캉'의 춤사위 같다. 일행시(一行詩)가 아니면, 무슨 경구나 속담처럼 재미있게 들린다. 하지만 그걸 서울말로 옮기고 보면, 영 맨송맨송해서, 무슨 맹꽁이 울음 같다.
그런데도 참 딱한 말버릇이 지금도 버젓이 활개 치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니고 서울 시민 가운데서도 중류의 말을 '표준어'라고 떠받들고, 서울 아닌 다른 고장의 말은 '사투리'라고 퉁을 주는 일이다.
'사투리/ 표준어'의 이분법은 지금도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다. 아니, 망언을 떨고 망발을 해대고 있다. '사투리/ 표준어'로 온 나라 안의 말을 양단(兩斷)한 것은 일제 치하의 저 욕된 식민지 시대의 일이다. 한데 그 본보기가 된 게 뜻밖에도 일본이다. 그 당시 이미 저들은 그들의 말을 표준어와 방언(方言)으로 양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뜻으로 다분히 치욕스러운 한국어의 양분법이 거기 꿈틀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은 없다.
한데 그게 언젠데, 그게 지금도 나부댄다면 그건 분명히 시대착오다. 이제 모든 면에서 지역차별은 없어져 마땅한 이른바, '지역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림짐작이긴 해도 '사투리'란 낱말은 '서툴다'와 사촌간쯤 될 것 같다. 물론 '방언'이란 낱말도 쓰레기통에 내버려야 한다. 방언이란 낱말을 곧이곧대로 풀면 어떻게 될까? 그건 '중안 아닌, 변두리, 외딴 곳의 말'이란 뜻을 갖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이, 그나마 중앙은 섬기고 떠받들고 지방은 깔아뭉개고 하던 아주 고약한 묵은 시대의 이분법이며 그 악습이 거기 엉겨 있다.
모르긴 해도 한 나라 안의 말을 표준어와 방언 또는 사투리와 표준어로 나누고 있는 국가는 흔할 것 같지 않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중국에서도 그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시엄씨 몰래 술 뚱쳐 먹고 이 방 저 방 다니다가 시엄씨 궁뎅이를 밟았네'. 진도 며느리들의 아리랑 타령은 진도 말이라야 제대로 멋 부리고 익살을 떤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 아리랑을 뜯어 고쳐서 '날 좀 보세요' 한다면 상대가 천하의 절색이라도 바라볼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제 '사투리와 표준어'의 이분법은 그만 두자. 호남 말, 강원 말, 충청 말, 영남 말과 나란히 서울말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