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강화역사관 입구에 있는 '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비'에 적혀 있는 글이다. 이 추모비는 '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사업회'가 새얼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01년 7월 건립했다.
죽산 조봉암은 인천 인물이자 한국정치사의 대표 인물(경인일보 2005년 6월30일자 14면 '인천인물 100인' 보도)이다. 그는 1952년 8월5일 제2대 대통령선거에서 80여만 표를 얻었다. 1956년 5월15일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216여만표라는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죽산 조봉암은 1956년 11월10일 창당한 진보당의 위원장으로 취임했고, 1958년 민의원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가변란 혐의로 체포됐다. 육군 특무대는 HID 공작요원인 양이섭에게서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조봉암에게 전달했다'는 자백을 확보, 조봉암에 대해 간첩 혐의까지 덮어 씌웠다. 검찰은 조봉암을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1959년 7월31일 결국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조봉암 선생은 인천 출신으로서 평화통일을 먼저 내건 분이다"며 "그 당시 '평화'를 말하면 간첩으로 몰 때다. 그 때는 그 누구도 '평화'를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종렬(인천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위원회 대표) 목사는 "평화와 기독교 정신을 가진 분이었다. 통일을 위해 희생을 당한 분이다"며 "그 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인천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죽산 조봉암의 장녀 조호정(80)씨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조씨는 "결국 해내고 말았다"며 "재심을 청구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지역 원로들이 수면 밑에서 조용히 진행하고 있는 조봉암 동상 건립사업(경인일보 3월16일자 3면 보도)도 활기를 띠게 됐다. 이제는 세상에 내놓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 이사장은 "동상을 세울 때는 반대가 없이 모든 시민의 축복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조감도를 다 만들어 놓고 (건립을) 준비 중이다. 시민과 더불어 착실하고 차분하게 진행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