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모든 일들이 호사다마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의 상황전개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어제 오늘 우리는 역사의 현장을 보았다. 분단의 상징이자 남·북 간 이념의 장벽이었던 군사 분계선을 힘찬 도보로 건너던 노무현 대통령의 당당함을 목격했다. 그리고 남·북 정상 간의 굳은 악수를 지켜봤다. 이를 본 국민들 마음은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한 간 불신의 골은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깊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북은 반세기 이상 총부리를 겨눈 채 정치·경제적으로 극한 대립을 해 왔었다. 진솔한 대화는커녕 극한 용어를 동원해 헐뜯기로 일관했던 것이 남·북한이다. 적이 아닌 원수라 해야 옳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금단의 벽인 군사 분계선을 대통령이 걸어서 넘어섰다. 분단을 극복하는 시발점이 된 셈이다. 당장 통일은 아니더라도 적대감은 상당히 희석된 듯도 하다. 골 깊은 감정이 봄눈 녹듯 사라짐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싶어 우려가 깊다.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첩첩산중이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동상이몽이란 얘기이다. 남·북한은 물론 주변 강대국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그들만의 분명한 노림수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 지원이든 아니면 북·미, 북·일 간 수교에 앞선 평화무드 조성일 수도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계산은 있다. 내심으로 핵포기와 한 걸음 더 나가 생물무기나 독가스 등 대량살상무기 폐기와 같은 군축 등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주변 강대국도 이 대목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북핵포기를 가시화하면서 어떡하면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지의 여부라 하겠다. 각자 나름대로의 계산이 다 다르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정상회담이 일부의 가지치기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남·북 문제 해결의 근본 치유책은 안 된다는 점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부족해서이다. 지금도 북한은 휴전선 일대에 수십만명의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방사포 등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미사일과 핵탄두를 보유하는 등 군사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냉전적 사고일지 모르지만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우선 핵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경제협력이고 평화선언을 한들 궁극적으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런 것들 모두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정세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어서 우리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설사 6자회담을 통해 핵 불능화가 실현된다 해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의 철저한 폐기만이 북핵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이다. 북에는 아직도 정치범 수용소와 인권유린 행위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등 주민들의 인권이 말살상태라 한다. 오직 김씨 부자에 대한 숭배와 충성만이 용납되고 있는 사회이다. 이를 우리는 더 두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이 문제들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한 마디 거론 없이 넘어간다면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외세의 개입에 앞서 남·북한 스스로가 해결의지를 보이고 결자해지할 경우 남·북 간 진정한 협력과 발전이 있을 수 있다.
오늘 정상회담에서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차근히 해결될 때만이 우리 한반도에 평화정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북한 정권을 설득하고 회유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야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의 봄이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