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현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일정 가운데 '아리랑'공연 관람을 두고 참 말들이 많다. 물론 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수구언론들의 감정적 반발심에서 비롯된 시비걸기 차원임을 짐작은 하지만, 들이대는 논리며 잣대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차마 정상회담 자체를 막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딴죽을 거는 수구언론들과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가 참 철없어 보인다.

조선일보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여론조사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관람임을 확인하려는 시도였지만 보기 좋게 망신만 당했다. 국민들 대다수(67%)가 봐도 괜찮다고 응답한 것이다. 봐서는 안 된다는 응답은 29%가 나왔다. 노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를 감안한다면 이는 놀랄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보지 말라고 한 이유는 '북한의 체제 선전과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내용'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60년 넘도록 세계 최강 미국의 제국주의와 맞서며 자긍심 하나로 살아온 북한을 지탱해온 기반임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민족적 자부심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10만여명의 어린 청소년들의 인권을 거론하기도 한다. 고화질 디지털 화면처럼 비쳐지는 카드섹션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공연 뒤에는 혹사 당하는 어린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못해 동원되었다면 인권침해의 소지가 충분하지만 상당수가 가문의 영광이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해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새벽까지 사설 학원을 전전하며 휴대폰과 컴퓨터 게임 없이 하루도 살아가기 힘든 남쪽 아이들에 비해 훨씬 건강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1만8천여명의 카드섹션 대원들은 그 고통으로 인해 적어도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 하나 남쪽에는 무의미한 삶을 못 이겨 목숨을 끊는 1만8천여명의 자살자가 존재한다. 인권 문제와 삶의 질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권문제를 유독 북한인권문제에만 집착하는 의도가 불순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단순히 잘 먹고 산다는 자신감으로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판단한다는 것은 심각한 판단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성숙하지 못한 판단이다.

무엇보다 '보지 말라'고 주문하는 수구 언론들의 오만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조선일보를 보지만 그 논조는 철저하게 거부한다. 이처럼 본다는 것과 그 논조에 동조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그러나 단지 공연을 본다는 것을 공연의 내용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걸로 환치시키는 재주가 참 용하다. 그런 식으로 온 국민들을 정신적 미숙아로 만들고 나서 정상회담의 의의를 희석시키려하는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틀리다'와 '다르다'는 분명 그 뜻이 다르지만 종종 같은 뜻으로 쓰곤 한다. '틀리다'라는 말은 절대적 가치를 판단기준으로 삼을 때 가능한 말이다. 이 세상에 절대적 가치를 소유할만한 존재가 없기에 종교와 신이라는 영역이 있는 게 아닌가. 하여 '틀리다'라는 가치판단은 일단 보류하는 게 성숙한 존재의 모습이요 미덕이다. 경험적 존재라는 한계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종종 자신의 정직함을 진실 또는 진리로 착각한다. 분명한 왜곡현상이다. 이러한 왜곡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틀림'이라는 가치 판단 보다는 '다름'이라는 가치중립적 판단의 자리에 서야한다. 다양한 민족과 체제, 문화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상생과 평화를 지향하는 '성숙한 자세'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통일을 하자면서 '틀림'의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은 일종의 만행이다. 아리랑 공연 정도도 수용 못할 남한의 체제의 허약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 '다름'의 잣대로 그 보다 더한 공연도 포용할만한 넉넉함, 그걸 이 땅의 수구세력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