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옛날이나 지금이나 적잖은 한국인들에게 권력은 매력 덩어리다. 그러기에 조선조 시대에 과거시험 보러 가곤 하던, 그 소위 '선비'란 이들이 남긴 전통이나 내림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 같다. 이건 정말이다.

온 세계의 동화에서 소년 주인공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탐색의 길', 곧 '참음의 길'에 오르게 되어 있다. 멀리 있을 무엇인가 매우 귀하고 희귀한 것을 혼자서 찾아 나서게 된다. 한데 한국의 동화에서는 정해 놓다시피 '과거'를 보러 나선다. 그 뻔한, 그 지천인 벼슬 찾아서, 권력 찾아서 나서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온 세계에서 가장 속된 동화가 이 땅의 동화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어진다.

사회적으로 소위 국가나 정치권력의 세가 크면 클수록 또 그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한 나라는 후진성을 면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할 때, 과거 보러가곤 하던 그 전통, 그 내림은 차라리 저주스럽다. 그게 지금껏 남아 있는 게 안타깝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의 고위층 비서관들이 두 사람씩이나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꼴로, 우리 한국 사회가 '권력만능사회'란 것을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준 것은 그 증거치고도 일급의 증거다. 그들은 각종 기관을 제 욕심대로 떡 주무르듯 했다.

그들에게 권력은 '도깨비 방망이'나 다를 게 없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럴 경우, 방망이를 휘둘러대고 두들겨 댄 저 '사람 도깨비'들도 문제지만 그들 방망이질 따라서 춤춘 당사자들도 문제다. 우리의 권력은 이처럼 부리는 자에게서나 부림을 당하는 자에게서나 다같이 '요술 방망이'인 셈이다. 그런 게 지금 우리나라의 소위 권력이다. 그건 요컨대 괴물이고 요물이다.

워낙 권(權)은 나무 이름이다. 그러던 게 저울이 되고 무엇인가 방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선 권은 속임수가 되었다. 다음으로 뭐든 헤아리고 측정하는 것도 권이 되었다.

이게 바로 권의 음지와 양지다. 사회의 독(毒)이 되고 악이 되는 한편으로 사회의 만사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권모술수(權謀術數)라든가 권사(權詐)라는 말은 권의 음지 중의 음지다. 권사는 사기 치기와 같은 말이다.

권은 그 꼴이다. 사기 치기인가 하면 준칙(準則)이고 기준이다. 그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제 마음대로 재주넘는 게 권이다.

그러다 보니, 권세, 권도(權道) 등이 그렇듯이 권력도 그 양단 사이에서 버꾸를 넘게 되었다. 권력은 그걸 쥔 자의 개인적 욕망과 야합을 하고는 설쳐대게 되었다.

올바른 저울 노릇하면서 사회의 준칙이 되어야 할 권력이 권모술수며 권사에 기울어서는 사회를 제 마음대로 움직여보려 들게 되었다. 그게 일부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의 권력이었다.

이제 참다운 민주사회답게 국가권력이 변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이제 국가권력도 사법권력도 국가와 사회를 올바르게 저울질해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서비스고 봉사라야 한다. 다음으로는 나머지 사회의 온갖 힘들과 병존하고 공존해야 한다. 이제 국가의 힘은 경제다. 그건 정치권력 보다 윗자리에 앉으면 앉지 내리 앉을 수는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이며 글로벌리즘을 계기로 삼아서 문화의 힘도 마찬가지로 세가 매우 커져 가고 있다. 교육이 팔을 걷고 활개치면서 그 힘을 과시해도 당연하다.

이렇듯이 국가권력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국가-사회의 힘과 나란히, 나란히 자리잡고 앉아야 한다. 아니 스스로 그들 아래에서 굽실거리면서 서비스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통치란 말은 정치가 저 잘났다고 입에 올리면 안 된다. 이제 그런 묵은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러는 것이 사회와 국가를 위한 권력이 될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 국가권력, 정치권력 그 자체를 위해서 경사스럽고 기꺼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