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는 군인과 그 가족 등 638명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로 향하고 있었다.

같은 해 2월 27일 새벽 2시. 이 배는 남아프리카 희망봉 앞바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면서 중앙부가 부러져 두 동강이 났고 사람들은 침몰하는 선미부분으로 피신했다. 구명보트는 3척만 남아 있었고 1척당 승선 가능한 인원은 겨우 60명.

구조될 수 있는 사람은 18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병사들을 갑판에 집합하도록 명령했다.

병사들은 마치 아무 위험도 없는 평상시처럼 신속하게 모여 줄을 맞추고 서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러는 동안 한편에서는 횃불을 밝히고 어린이와 여자들을 구명보트로 하선시켰다.

갑판 위 병사들은 마지막 구명정이 떠날 때까지 의전행사 때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구명보트에 탄 사람들은 버큰레이드호 갑판 위에서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선체와 함께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침몰 후 몇 명의 병사가 물 위로 떠올라 살아났지만 그들은 구명보트가 아닌 다른 나무판자 등을 잡았다. 사고 후 구조선이 도착해 보트에 남아있는 193명의 사람을 구출했지만 사령관 세튼 대령을 포함한 435명은 이미 수장된 후였다.

그 이전까지 선박에 사고가 발생하면 힘센 자들이 먼저 구명정을 타고 약한 부녀자와 아이들은 희생돼야 했지만 버큰헤이드호에 의해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아름답고 숭고한 전통이 생겨나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환경안전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