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자이툰부대 임무 종결 시기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가 지난해 한 약속과 다른 제안을 드리게 된 점에 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전제한 뒤 '국익'을 위해 '파병재연장'을 선택했다며 국민여러분들의 '이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죄송한 일'을 굳이 비판받으면서도 하려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지난 6월까지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던 '임무종결계획'에 대한 약속을 어겼다는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것이고, 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한미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라 비판해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노 대통령 자신도 "국민의 반대 여론이 더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이라고 판단했다"라며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색하다. 자국의 '평화'를 위해 타국의 '평화'를 짓밟는 전쟁에 참여한다는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변명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미국내에서 조차 '불법적, 비도덕적 전쟁'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희생자만 30만에서 90만명이라는 통계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이라크 시민들의 죽음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미군만 해도 벌써 4천여명을 넘어섰다.
이라크 침공 당시 다국적군으로 파병을 했던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사실상 이라크에서 발을 뺀 상태이고, 영국군 역시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중이다.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테러전쟁'의 명분은 사실상 '테러'를 양산하면서 '피의 악순환'만 가져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갈등의 한 축이 되고 있는 쿠르드족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이 과연 이라크와 터키 등 주변 국가들과의 평화를 고려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노 대통령이 '과감히' 선택한 파병연장은 국민들의 혼란은 물론 얼마전 벌어진 '피랍사건'과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파병으로 시작한 노 대통령의 임기는 파병재연장으로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공조'와 '국익'은 이라크 시민들의 목숨과 바꾼 대가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평화가 아닌 '모두의' 평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의 세계적 군사패권을 위한 추악한 전쟁에 파병하고 다른 나라 백성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동맹이고 공조인가? 전쟁의 불길 앞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죽어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오무전기 노동자 김선일씨, 윤장호 하사에 이르는 무고한 목숨마저 희생시킨 것이 과연 '남는 장사'인가? 그것도 모자라 레바논으로까지 파병을 확장해 날로 전쟁의 비극을 키워가는 것이 세계 인류의 평화에 대한 기여인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다짐이 상황과 조건, 그리고 정치적 잣대로 수없이 번복되고 있는 현실을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이라크 파병연장 입장은 철회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