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섣부른 대응으로 '화'를 키우지 말자며 '무대응'과 '우회설득' 작전을 고수해 왔으나 계속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강경대응으로 기조를 급선회 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10% 초반대에 그칠 것이라는 자체 전망과 달리 최근 며칠 사이 그의 지지율이 급상승세를 타면서 일부 조사에선 20%를 돌파한 데 따른 위기감이 깔려 있다. 측근들 사이에선 이러다가 범여권이 아니라 내부의 '적'에 발목이 잡혀 거의 다 잡은 대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당 지도부와 측근들은 이 전 총재를 설득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설득을 통해 이 전 총재의 대선출마 의지를 최대한 꺾어 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같은 온건 기류는 오후 들면서 급변했다.
이 전 총재가 내주쯤 출마 쪽에 무게를 실어 입장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두 개 방송사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이 20%를 넘나들며 단박에 2위로 급부상하는 반면, 이 전 총재 출마시 이 후보의 지지율은 40% 안팎 선으로 크게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급기야 선대위 총괄본부장인 이방호 사무총장이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이 전 총재의 2002년 대선자금 처리 내역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 대선자금 모집과정과 함께 잔금 처리 과정에 상당한 의문이 있고, 그런 내용을 담은 '비밀수첩'을 최병렬 전 대표가 보관하고 있으며, 이 전 총재가 여기에 깊숙이 연루돼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자칫 당 전체를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몰아 넣을 수 있는 '뇌관'을 스스로 공개한 셈이다. 그만큼 이 전 총재의 급부상이 부담스러웠다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단 이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사무총장이 협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취한 행동이라는 것.
박형준 대변인은 "후보는 전혀 몰랐다. 사무총장이 독단적 판단으로 그렇게 했다"면서 "후보의 의견은 '당이 이 전 총재를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기존 입장에서 바뀐 게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치고 빠지기' 식의 이중플레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혀 아니다"며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후보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부 기류는 이미 강경 쪽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한 측근은 "이 전 총재가 이미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더 이상 설득이 안 통할 것 같다"고 말했고, 다른 측근은 "이 전 총재의 명분 없는 행동에 정면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이 후보와 측근들은 이 전 총재의 지지율 상승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여론 흐름을 주시하고 있어 한나라당과 이 전 총재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