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철 (한국은행 경기본부장)
최근 국제유가가 지난 2일 서부텍사스유(WTI)가 배럴당 95달러선을 사상 처음으로 돌파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국제유가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적인 원유수급불안에서 찾을 수 있겠다. 중국 등의 급속한 경제성장 등으로 원유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산유국들의 석유 증산은 더딘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터키와 쿠르드족간 분쟁, 이란과 미국간 긴장 고조 등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까지 유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많은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세에 가속도가 붙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전세계적인 달러화 약세가 그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산유국들이 달러가치가 하락하는 만큼 줄어드는 판매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달러표시 원유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달러화 약세로 달러자산의 투자매력이 떨어지면서 국제투자자금이 원유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국제유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달러화 약세의 영향은 비단 석유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체투자처를 찾는 국제투자자금이 금으로 몰리면서 금의 국제가격이 지난 2일 1980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온스당 800달러를 돌파했으며, 국내에서도 3.75g당 가격이 10만원을 넘어서는 등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달러화 약세의 근본원인은 전체 GDP의 6%에 달하고 있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에 있다. 최근에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에 따른 미국의 실물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美연준이 금리를 잇달아 인하하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달러화 가치의 하락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원달러 환율이 지난 10월말 900.7원까지 하락하였으며, 유로화와 태국 바트화가 전년 말 대비 10% 가까이 평가 절상된 것을 비롯해 중국위안화, 파운드화, 캐나다달러화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가 금년 들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경제 일각에서 환율하락, 고유가 등 달러화 약세로 인한 대외여건 악화가 향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환율하락은 수출 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우리경제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연간 원유수입량이 8억9천만배럴에 이르는 현실 속에서 국제유가 상승은 기업들의 원자재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교역조건 악화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가계의 입장에서도 기름값이 오른 만큼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소비심리를 다시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환율과 국제유가가 크게 요동쳤던 지난 10월에도 사상 최고치인 229억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하는 등 고유가 등에 따른 충격파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1·2차 오일쇼크 당시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가계의 소득수준이 유가상승의 충격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큰 폭으로 향상 된데다, 우리 기업들도 그동안 대외여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체질 개선을 꾸준히 이루어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환율하락으로 인해 원화가치 상승이 국제유가 상승폭을 크게 상쇄해 준 효과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제금융시장에서 이러한 달러화 약세와 고유가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각급 경제주체들은 대외여건 변화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각종 악재에 대한 사전적인 대응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고유가 등에 따른 우리경제전망에 대한 지나친 우려보다는 개인들의 에너지 절약 실천과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성 제고 및 외화자산의 환위험 관리 등의 노력과 함께 지속적인 경영혁신을 통해 우리 기업의 자체 경쟁력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