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으로 접어들면서 쪽빛 하늘과 어울려 곱게 물들었던 가을 정취도 서서히 겨울로 차가운 여행을 재촉하고 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세월의 흐름 속에 역사의 아픔이 오롯이 새겨진 날이 있다. 바로 17일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날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기도 하다.

'을사늑약'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아도 '순국 선열의 날'이 갖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났고, 그 뒤 10년 만에 조선의 자주적 외교권은 을사늑약에 의해 일제에게 강제로 수탈당했다.

일제의 조선왕조 해체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당시 시종무관장(현 청와대 경호실장) 민영환은 대궐 앞에 소청을 차려놓고 상소를 올렸지만 그 뜻이 이뤄지지 않자 이천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을 남기고 자결했다. 그 뒤를 이어 뜻있는 신료들의 상소와 죽음이 이어졌다.

'아, 저 개 돼지만도 못한 정부대신이란 자들은 자신의 영달과 이득을 위해 일제의 위협에 겁에 질려 머뭇거리고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팔아먹은 도적이 되어 사천년 이어온 강토와 오백년 사직을 남에게 바치고 이천만 백성을 노예로 만들었다(이하 생략)…'는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란 제목의 사설이 황성신문을 통해 실려 나가자 각지에서는 일제를 규탄하는 의병운동이 폭발했다.

이후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일제의 총검에 무참히 희생되며 뜨거운 피를 전국 방방곡곡에 뿌려야 했다.

정부는 이런 항일독립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순국선열들의 뜨거운 애국정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순국선열들의 희생과는 대조적으로 을사늑약 체결의 주역인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 5적은 매국·친일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백작위 신분을 부여받고 당시 10만원에서 15만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을 은사공채로 받으며 호사를 누렸다. 이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는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지난해 8월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설치해 반민족 친일행위자가 남겨놓은 재산에 대한 환수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재산조사위원회에서 환수대상으로 결정, 국가보훈처에 통보한 친일행위자 재산만도 310필지, 127만여 ㎡에 이른다.

국가보훈처는 이렇게 추적해 국고로 환수된 친일행위자 재산을 독립유공자 및 유가족들을 위한 복지사업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우리 역사에서 을사늑약은 그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불과 100년 전의 일이고, 여전히 그 아픔은 우리 사회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국내에서는 물론 사랑하는 가족과 고국산천을 등진 채 낯설고 물선 북간도, 만주, 중국, 노령 등 해외로 건너가 항일독립군기지를 건설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목숨을 바쳐 투쟁한 선열들의 올곧은 민족정신과 위대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 위에 발 딛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 며칠 있으면 '순국선열의 날'이다. 지난날 선열들이 흘린 값진 피와 땀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의 뜨거운 애국정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이 오늘을 사는 후손들에게도 계승될 수 있도록 이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