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배 (인하대 법대학장·객원논설위원)
1997년 7월 1일 0시. 중국인들은 홍콩의 반환을 환호했다. 그러나 150년 동안 홍콩에 휘날리던 국기를 내린 영국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선전(深 ).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형 자본주의를 학습한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홍콩을 능가하는 컨테이너 터미널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신항만이자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경제자유구역이다. 광저우(廣州). 우리에게는 질병 사스로 알려진 도시다. 그러나 'Made in China'라는 이름을 붙인 수출상품의 3분의 1이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은 모두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세계의 공장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이곳을 210여명의 인천시민들이 최근에 다녀왔다. 이름도 비장하다. '인천발전을 위한 시민대장정'. 상하이와 부산·광양에 이어 3번째다. 행사의 주최와 후원에 여러 단체와 기관이 앞장을 섰다. 그러나 행사를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은 새얼문화재단의 지용택 이사장이다. 그의 열정과 사랑이 이번 행사를 가능케 했다는 총평이 결코 공치사가 아니었다. 7대의 버스로 시작된 투어에 참가한 분들은 인천에서도 뵙기 어려운 분들이었다.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 박호군 인천대 총장, 서정호 항만공사 사장, 오경환 신부, 이창구 인천행정부시장, 한광원 국회의원, 홍승용 인하대 총장, 기업대표와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 등. 인천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발적 참여한 분들이었다. 모래알 같다는 인천에서 이처럼 많은 분들이 각자 비용을 부담하면서 참여한 사실 부터가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인천지역은 국가적 혹은 지역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타 지역보다 응집력이 부족하다고 타박 받아왔다.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가 망국병이라고들 하지만 색깔이 없어 탈이라는 하소연도 들었다. 그러나 인천의 시각으로 주장 삼각지를 둘러 본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홍콩 첵랍콕 공항의 물류 시스템과 선전의 컨테이너 터미널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과연 따라 잡을 수 있을까. 항만의 경우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앞서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동아시아 물류허브를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신항만도, 제 3활주로도 지지부진한 인천의 현실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표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도 항만과 공항을 곳곳에 건설한다는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행동은 없고, 구호만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한숨을 돌려 중국 식민지의 기원인 아편전쟁 기념관, 중국의 국부라는 쑨원(孫文)의 중산기념관, 혜능 선사를 모신 광효사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중국의 정신적 힘이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상징적 장소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한다는 새마을 운동에도, 민주화운동에도 삿대질하기 바쁘다. 그러나 시민대장정은 새로운 힘의 원천으로 살아나고 있다. 3차례의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열기가 대표적이다. 토론회장에는 인천이 국가성장 동력으로서 굳건히 자리잡아야한다는 결연한 의지와 절박함이 묻어 있다.

작지만 감동을 주는 변화도 많다. 부탁을 해도 잘 진행이 안 되던 인천에서 인하대 로스쿨 유치를 위해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가를 걱정하는 전화와 공문이 밀려든다.

인천시의 로스쿨 지원전략 추진, 인천시의회의 결의문, 인천상공회의소와 경총의 건의문, 지역언론의 전폭적인 관심과 보도. 지난 3년간 로스쿨 유치를 준비해온 인하대로서는 눈물겹도록 반가운 일이다. 강원, 제주, 전북, 경기도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지역의 목소리를 낼 때마다 주눅 들었던 우리들이다. 그러나 인천이 다시 자신감을 갖고, 이를 결집해내는 저력과 힘을 보여주고 있다. 참된 의미의 대장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