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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박산과 재주봉을 잇는 마루금에는 골프장이 놓여 있다. 멀리 함박산이 보인다.
'The First Global Yong-In.' 영동고속도로 용인IC를 빠져나와 45번 국도 평택방향으로 향하던 탐사단을 맞이한 건 용인시를 홍보하는 아치형 구조물이었다. 총 인구 80만명. 연평균 인구 성장률 11%. 서울시 면적의 98%에 이르는 광활한 행정구역. 각종 수치와 규모로만 본다면 용인시는 '사람이 몰리고 있는' 도시다. 사람이 몰리는 만큼, 전체 면적의 57%에 이르는 산과 들은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 마루금(산등성이)에 놓인 골프장
지난 10일 탐사단은 마루금 선상에서 탐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마루금에는 E골프장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인시 처인구 남동 무네미고개. 이날 오전 11시, 탐사단은 골프장의 경계를 알리는, 초록빛 철제 펜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었다. 하지만 펜스 주변의 나무에는 한남정맥 구간임을 알리는 꼬리표가 군데군데 달려 있었다. 골프장을 멀리 돌아 이곳을 거쳐간 이들의 흔적이었다.

수북히 쌓인 낙엽은, 전날 내린 비를 머금고 있었다. 더딘 산행이었다. 20분가량 오르자 18홀 규모의 골프장 형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북쪽에서 '용인의 주산'이라고 불리는 석성산, 함박산이 S자 모양으로 이어져 있었다. '절세의 지형' 위에 세워졌다는 골프장은 S자축의 끄트머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신정은(29·여) 인천녹색연합 간사는 "이 곳은 한남정맥 구간 중 유일하게 마루금 선상에 골프장이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탐사단은 '골프장 왕국'의 면모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옛 마루금의 흔적을 간직한 카트도로 한편은 '말뚝박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게 완성되면 그나마 있던 우회길도 막히게 된다. 신정은 간사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골프장을 만든 분도, 지금 골프를 즐기는 분들도 한남정맥의 존재조차 몰랐을 거예요."

# 산봉우리 위에 세워진 십자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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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주봉 정상에 있는 십자가탑
이날 오후 1시 30분. 재주봉을 향해 길을 걷던 탐사단은 나무 1백여그루가 누군가에 의해 벌목돼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마루금을 따라 약 10 아래에는 회색빛 콘크리트 길이 놓여 있었다. 제 몸을 희생한 참나무, 소나무는 콘크리트길에서 마루금선상으로 이어지는 작은 샛길을 만들었다. 볕이 잘 들고, 길과 잘 연결되는 무덤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가 저지른 일이었다.

장정구(34) 인천녹색연합 생태도시부 국장은 "지난 봄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무덤이 하나 뿐이었는데 이후 누군가 무덤 한 개를 추가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개인 소유 땅일지라도 나무를 자르기 위해서는 해당 관청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오른 재주봉에는 약 30m 높이의 녹슨 철탑 한 기가 세워져 있었다. 철탑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놓여 있었고, 십자가는 재주봉 남측 사면, 처인구 이동면 묵리에 조성된 S골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탐사에 서영길(51)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밤이면 이 철탑 십자가에 불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빛을 잃은 십자가탑은 이렇게 한남정맥 용인구간 한 가운데 서 있었다.

# 사라진 봉우리
처인구 호동 예직마을 부근에는 거대한 채석산이 있다.

재주봉을 지나 바래기산으로 향하는 마루금에서는 이 채석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회색빛 속살을 내비치고 있는 모습이 처량했다.

이름없는 채석산 봉우리는 깎여진 남측 사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속살을 포클레인과 트럭이 파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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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시 처인구 예직마을 부근에 있는 채석산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오후 4시. 산을 내려오는 길에 예직마을에서 만난 김익송(72) 할아버지는 "한 10년 전부터 까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평생을 보낸 김 할아버지는 채석산이 된 무명봉의 이름을 '노말장등'이라고 했다.장등은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방언이다. 우뚝 솟은 산마루는, 칠십 노인의 기억속에만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채석산 입구에서 약 20여 앞은 지방2급하천인 운학천이 흐르고 있었다. 운학천은 한남정맥 문수봉에서 발원한 경안천(국가하천)으로 이어진다.

장정구 국장은 "경안천은 개발 붐이 일고 있는 용인시내를 관통해 한강에 이른다"고 말했다.

# 김대건 신부 유적지인 망덕고개
11일 오전 10시10분. 탐사단은 호동 해실이 마을서 산행을 시작했다. 약 15분가량 낙엽이 수북이 덮인 급경사길을 오르자 망덕(望德)고개가 나타났다.

망덕고개는 26세 나이로 순교한 김대건(1822~1846) 신부가 생전에 사목활동을 했고, 순교한 뒤 유골을 운구한 길이다.

김대건 신부는 생전에 북쪽 호동 해실이 마을과 남쪽 학일리, 문촌리를 드나들며 포교활동을 했을 것이다.

# 한남정맥을 사이에 두고 땅값 차이만 두 배
이날 낮 12시30분. 문수봉에 있는 정자에서 인근 사암리에 사는 주민 4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한강수계와 땅값의 연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한남정맥을 사이에 두고 동쪽(사암리) 하천은 팔당으로 가고, 서쪽은 서해로 빠져나가요. 그래서 사암리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죠. 용인 땅값 많이 오른다고 하죠. 이쪽은 완전 시골이에요. 보호구역으로 묶인 탓에 아무것도 짓지를 못하거든요. 그래서 건너편 마을과 땅값 차이만 두배가 나죠. 이곳에는 아무 것도 지을 수가 없어요."

한강유역환경청은 한남정맥 용인구간 동측사면 발원 하천 부근을 '한강수변구역'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마루금 선상 곳곳에는 '한강수변구역 NO 경안천'이라고 적힌 노란색 사각기둥이 박혀있었다.

수도권 1천200만 주민들의 먹는 물을 보호하기 위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곳 주민들이 갖는 피해의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탐사단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답변을 내지 못했다.

■ 탐사일정
11월 10일 : 무네미고개~재주봉~예직마을
11월 11일 : 망덕고개~문수봉

■ 한남정맥 시민탐사단 참가자
민속식물연구소 송홍선(46) 박사, 인천녹 색연합 생태도시부 장정구(34) 국장, 신정은(29·여) 간사, 서영길(51) 회원, 김수진(26·여)씨, 경인일보 사회부 김명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