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을 꿈꾸며 17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나름대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또한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방향과 공약의 특징을 각인시키기 위해 슬로건으로 정리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공약(公約)을 실천하든, 공약(空約)으로 변질돼 폐기되든 그것은 나중의 일로 우선 제시한 정책에서 선택받고 싶어한다. 한데 이에 앞서 벌어지는, 대세를 선점하기 위한 기싸움이 가관이며, 공약발표 이후 벌어지는 립서비스와 상대의 공약을 공격하는 말의 전쟁도 볼 만하다.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말의 공방과 말의 학대로 우리말을 사랑하는 국민들을 불쾌하게 하면서도 당당하다.
말은 살아 있는 생물체로 비유되곤 한다. 그래서 말에서 인격을 찾고, 인물 됨됨이를 살핀다. 또한 미래를 점치기도 한다. 이러한 말이 정치권에서는 용도폐기된 듯한 난감함을 경험하게 된다. 호소력있는 포장된 말의 톤이 비슷하며, 자가당착형 말의 풍토가 만연해서다.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이러한 행태는 대선 정국에서는 더해, 신뢰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도 그런 말을 하는 후보 중 한 분을 선택해 나라의 일꾼으로 삼는 일을 국민들은 한다. 어리석은 행위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람되나 가끔은 말을 계량화해 대권 도전자의 말을 점수로 환산하면 몇 점이나 될까? 늘 궁금하면서도, 국민들이 낙점한 대통령의 점수가 수준 이하로 나오는 것이 우려돼 잠시의 생각뿐 더 이상 진전없이 도리질로 접어두곤 한다.
사전을 살피면 말과 관련있는 속담이 꽤 많다. 그만큼 생활에 있어서도 말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집안에 잔말이 많으면 살림이 잘 안된다), '말로는 못할 말이 없다'(실지 행동이나 책임이 뒤따르지 아니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다 할 수 있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상대편이 말을 고맙게 하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후하게 해 주게 된다) 등등 정치인이 새겨둬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속담인 것 같아 추천하지만, 그들만의 언어양식에 채택이 되는 것은 무리인 듯해 씁쓰름하다.
언어는 인류를 동물과 구별하는 특징의 하나다. 그래서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면 인격이 없는 특정 동물의 소리에 비유하곤 한다. 후보등록이 끝났다.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함량미달인 험악한 말의 공세가 더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 발달과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말의 전파력과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정치권 특히 대선 어록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당장 진위 판단은 어렵게 된다. 그러니 정권교체와 유지로 대별되는 '잃어버린 10년' '되찾은 10년'을 제대로 재단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서 아예 판단을 하지 않고 신성한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하는 다수를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나 흠집은 있다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다는 식의 스스로 인격을 비하하는 문화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개개인의 인식이 변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바른 문화가 형성된다는 생각이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인격은 높다라고 하자. 또한 세상에 보탬이 되는 말을 생각하자. 변화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남을 탓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가 맞는 말인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