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이는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다.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 사이에서 선과 진리를 선호하는 본래적 자기를 양심이라고 정의한다면, 양심을 버린 자는 곧 공공의 적이요, 타도돼야 할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동서를 막론하고 양심은 가장 고귀한 가치로 인정받아왔고, 도덕과 법의 종속변수가 아닌 인격체가 지닌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그 양심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로 존재하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 걸 투기한다면 살아있으나 죽은 존재다.
지난 19일, 무단투기된 양심에 대하여 전국의 철학자 230명이 들고 일어섰다. '철학 앙가주망'이 일어난 셈이다. '개념'이라는 영역의 전문가답게 철학자들이 들고 일어선 영역은 인간의 '양심'이었다. 그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을 지지하며 그 양심의 구체성과 진정성에 손을 들어줬다. '개념' 정의를 주업으로 하는 철학자들이 시대정신이라는 현실 참여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물리적인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비롯된 삼성비자금 문제를 보는 시각이 심상치 않은 방증이기도 하다. 삼성제국이라는 초헌법적인 존재의 부당함과 거기에 대항하는 한 개인의 양심고백을 수용못하고 주춤거리는 현실 속에서 양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줘야 할 국가와 국민의 왜곡된 시각을 고발한 셈이다. 이에 대한 삼성의 대응은 모르쇠 내지는 법적 대응이 전부다. 간간이 김 변호사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며 본질을 호도하려는 흔적들이 보인다.
삼성비자금 공방 속에서 김 변호사의 양심과 삼성의 양심이 충돌하고 있다고 한다면 BBK 공방에서는 김경준씨와 이명박 후보의 양심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한 쪽에서는 BBK 실소유주가 이 후보라고 주장하며 증거를 들이대고 있다. 이 후보 측에서는 김경준씨의 주장과 증거를 허위와 위조로 치부하며 그와 관련된 논란 자체를 회피하는 인상이다. 국제적인 사기꾼과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하여 피의자의 음성을 고스란히 내보낸 MBC에 대하여 한마디 날렸다. '집권하면 두고 보자'는 협박과 법적 대응이 뒤따랐다. 위조와 허위 경력으로만 따진다면 이 후보도 만만치 않지만 이처럼 안하무인격으로 다그치는 것은 도무지 꺾일 줄 모르는 지지율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과 대선 후보의 양심이 최대 화두로 오르내리고 있는 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문제는 이러한 양심의 충돌이 이미 국민들 사이에서는 판단이 끝났다는 데 있다. 여론조사 결과이긴 하지만 이 후보보다는 김경준을, 삼성보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에 더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흐트러짐 없는 저들의 대오를 보면서 양심을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 지켜내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과 그 견고함에 숨이 막힌다. 그 와중에 골병드는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방치된 우리 동네 '양심거울' 앞은 이른 아침이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는 보습을 본다. 새벽녘 청소부들의 손길이 거쳐간 모양이다. 그들의 거친 손길을 통해 정돈된 양심거울을 보며, 지저분하다 못해 추악하기까지 한 '대한민국 양심거울'을 다시 떠올린다. 이번 대선을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