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 해의 백미는 이른바 '옷 로비 사건'이다. 내로라 하는 재벌총수 부인이 수천만원짜리 옷들을 구입, 소위 권력 실세 장관 사모님들께 바쳐왔다는 이 사건은, 그 해 내내 핵심 이슈가 됐다. 특히 관련 사모님들의 책임 떠넘기기식 '거짓말 대행진'은 캐면 캘수록 지독한 악취를 뿜어내며 흥미(?)를 돋우었다.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장식한 낯 뜨거웠던 추태들로, 영원히 사라져 주기를 바랐던 대표적 사건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은지 불과 2년밖에 안되던 때다. 여전히 기업들 도산이 이어지고 노숙자가 늘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 멀쩡했던 가정들이 해체되는 등 백성들 고난이 극심했던 때였다. 그런데도 일부 고관 갑부들의 행태가 이랬으니 그 실망과 분노가 오죽했겠으랴.
이제 새 세기(21세기)에 들어선지도 8년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현 정부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마지막 해 연말이기도 하다. 그러면 올 한 해는 또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을까. 아무리 더듬어 봐도 그 때(1999년)만큼 흥미진진한 사건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그 때보다 몇갑절 더 심한 악취를 뿜는 추태들만 연이어 생각난다.
우선 모대학 유명 여교수의 가짜학위 파문과, 그녀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난 청와대 정책실장의 염문이 잠시 흥미를 돋우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치정 유지를 위해 권력을 남용, 막대한 국가 예산을 부당 배정하는 등 비리를 저지른 게 알려지면서, 흥미보다는 분노가 앞섰다. 게다가 또 다른 청와대 인물(의전비서관)의 세금무마조 거액 수뢰혐의, 거기에 연관 국세청장까지 거액을 챙긴 사건은 분노를 넘어 좌절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그 뿐 아니었다. 대한민국 유수의 재벌기업 거액 비자금과 로비 내역이 폭로되면서 나라를 온통 들쑤시고 있다. 한때 그 기업 법무담당 변호사였던 이의 소위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폭로는, 그가 계속 입을 열 때마다 메가톤급 폭탄이 되고 있다. 불법 부정의 파수꾼인 검찰 최고 수뇌급들의 이름이 떡값 명단에 오르내리고, 그룹 계열사들의 천문학적 금액의 분식회계 등이 폭로됐다. 여기에 영향력 있는 공무원이나 정치인,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까지 특별관리(?) 대상이었다는 데엔 아예 할 말을 잃게 한다. 마침내 특검까지 불러와 언젠간 진위가 밝혀지겠지만, 이 모든 게 정녕 사실일까봐 되레 두려울 정도다.
그런데 메가톤급 폭탄이 또 터졌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승진과정에 매관매직이 비일비재하다는 폭로다.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할 때 "대체로 행정직은 5천만원, 기술직은 1억5천만원을 단체장들에게 바쳐왔다"고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밝힌 것이다. 매관매직이라면 아득한 옛날 멸망 직전의 왕조시대에나 있었던 걸로 생각해왔는데…. 그런 자금을 만들고 보충하느라 또 얼마나 많은 비리와 부정이 저질러졌을까. 그저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런 일들에 비하면 지난 세기 말 사건들은 차라리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나라 곳곳에 온통 악취가 진동한다. 이렇듯 구석 구석 썩어문드러지고도 용케 버티어왔다 싶다. 도대체 힘없는 백성들은 무얼 믿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기필코 살기 좋은 나라 만들겠다"며 호언장담하는 대선 후보님들. 누가 당선될지 몰라도 제발 덕분에 이처럼 썩은 웅덩이들부터 깨끗이 퍼내주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