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의 지적재조사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문제는 '최소 3조~4조원이 드는 사업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난 2002년 감사원의 지적재조사사업계획안의 평가안은 지금까지 지적재조사 사업시행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감사원이 재조사사업은 심각한 토지분쟁을 일으켜 최소 5조~17조원의 소송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 지적 관계자들은 국가기관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사업 시행에 있어서 소송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 타이쭝시 중정지정사무소 진방무(陳芳茂) 주임이 1920년대와 1950년대, 그리고 최근에 작성된 지적도를 펼쳐보이며 대만의 지적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무세기자·kimms@kyeongin.com

▲공공기관이 중재에 나선다=대만이 1976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의 도시지역을 대상으로 지적재조사 사업을 펼치는데 든 총 비용은 71억 대만달러(약 2천130억원)이다.

이 중에서 토지경계 분쟁으로 인한 비용은 대만 관계 당국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정도다.

실제 30여년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적재조사로 인한 토지소송은 전체 필지의 0.0003%였다. 사실상 토지경계 분쟁소송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는 대만이 지적재조사 사업을 하면서 '부동산 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토지경계 분쟁 발생시 측량사가 일단 적극적으로 화해를 권고하지만 이의 실패시에는 조정위원회가 나서 양측의 면적 증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토지경계를 분할해 주는 것이다. 법원 역시 대만의 지적낙후성을 인정, 대부분 조정위원회 의견을 수용하기 때문에 소송 건수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중화민국지적측량학회 오만순(吳萬順) 이사장은 "한국, 일본, 대만 3국의 지적에는 모두 심각한 문제점이 있지만 그나마 한국의 지적이 시기적으로 가장 늦게 완성됐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편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어떻게 중재하느냐에 따라서 지적재조사 사업에서 토지소송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만보다 낮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민간을 활용하라=대만도 지적재조사 사업 이후 1997년까지는 정부가 측량, 등록, 등기 등 지적과 관련된 사업의 전 분야를 독점했다.

토지정보가 국가의 핵심정보인 만큼 사업주체가 관련 정보에 대한 책임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만도 결국 1997년부터 매년 지적사업의 일부를 민간시장에 개방했다. 한정된 공무원 인원만으로는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고 필요 인력 및 장비 등을 무한정 충원할 수도 없었다. 재조사 사업 이후 공무원 및 지적장비의 과대 충원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과 같이 객관적이어야 할 국가사무에 민간업체가 참여함으로써 예상되는 문제점도 있었다. 경쟁입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모든 업체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업 이후 문제 발생시 책임소재도 불분명했다. 또 지적관련 민간업체는 소규모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부도와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만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입찰가격은 물론 기술력, 회사규모, 회사의 재무상태까지 꼼꼼하게 평가한다. 또 민간업체의 성과물은 규정에 따라 공공기관의 검증절차를 거친다.

여기에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년 4~6개의 업체를 새롭게 선택해 민간업체에 내재해 있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했다.

타이쭝 중정지정사무소 진방무(陳芳茂) 주임은 "한국은 여전히 공공기관이 지적사무를 독점하고 있지만 대만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이미 민간에 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또 민간에 시장을 개방했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다"며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지적사무를 공공기관이 독점한다면 지적재조사 사업의 공감대 형성에도 도움이 될 리 없을 거 같다"고 조언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