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건물이 자신의 땅을 침범한 것으로 밝혀지자 경계 분쟁이 발생한다. 원만한 합의에 실패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적정보와 실제 토지정보가 다른 불부합지(不符合地)가 살인까지 부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03년 일본에서 출판된 소설 '경계살인(境界殺人)'의 대강의 줄거리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지적을 도입한 일본에서 낙후된 지적제도가 소설의 소재로 사용될 만큼, 일본의 엉터리 지적은 해마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 일본 오사카현 토요나카시(豊中市) 도로변에 설치해 있는 측량 기준점. 일본은 지적재조사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자 지난 2004년부터 전국 각지의 도로변에 이와 같은 기준점을 설치했다. 도로변 기준점 내에 있는 사유지들은 토지소유자끼리 경계분쟁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서둘러서 국·공유지만이라도 재조사를 끝마치려는 일본 당국의 관심이 엿보인다. /김무세기자·kimms@kyeongin.com
▲일본, 지적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일본 전 사회에는 일대 개혁의 바람이 분다. 토지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본은 1873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조개정사업'이라는 이름의 근대지적 설립 작업에 나선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력이란 것이 워낙 열악한 수준이어서 일본은 1951년 또 다시 지적재조사 사업을 펼친다. 이 역시 아시아 최초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지적제도는 주변국에도 뒤처지는 '지적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실제 일본은 재조사 사업 50년이 넘었지만 2005년 현재 일본의 지적재조사 사업진행률은 47%에 불과하다. 그나마 오사카(2%), 교토(6%), 나라(10%), 치바(12%), 도쿄(18%) 등 정확한 토지정보가 보다 절실한 대도시의 재조사 사업 진행률은 평균에도 한참 뒤처진다. 당연히 재조사 미완료 지역의 토지정보는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은 지적재조사 사업 이전에 작성된 지적도를 현재의 지적도와 구분해 공도(公圖)라고 하는데, 재조사가 완료되지 않아 공도만이 존재하는 지역의 토지정보는 100여년 동안 지적도를 그대로 방치해 온 우리나라 지적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등기부에 기재된 토지정보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부동산소개소에서 조차 "해당 토지가 등기부 상으로는 OO㎡이지만 실제 면적은 측량을 해봐야 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낙후된 지적제도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동경공공촉탁등기토지가옥조사사협회(東京公共囑託登記土地家屋調査士協會) 와시오켄지(鷲尾賢司) 이사장은 "현재 일본에서는 낙후된 지적제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비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민들조차 낙후된 지적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굳이 통계를 작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며 일본의 지적제도에 대한 심각성을 설명했다.


▲최신 기술에 후진적 지적=그렇다고 일본이 지적재조사 사업에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낙후된 지적제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치솟자 지난 2004년에는 300억엔(円)의 예산을 들여 전국 각지의 구역별 측량을 시작한 것이다. 일필지별 측량작업으로는 사업의 진행속도가 나지 않자, 정부가 국공유지인 도로만 측량하고 도로로 나뉘어진 각 구역 내에 있는 사유지는 토지소유자끼리 해결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2004년부터는 미국 GPS 위성 24개로부터 전파를 잡아 측량의 기준점을 결정하는 전자기준점제를 도입했다. 지진이 많은 일본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측량 기준점을 지구 표면이 아니라 지구 밖에서 정한 것이다.

오사카현 토요나카시(豊中市) 도로관리과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衆信) 주간은 "일본 지적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주변국들도 일제(日製) 장비들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지적제도 자체가 잘못돼 있다 보니 많은 돈을 쓰고서도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확한 지적제도와 올바른 지적재조사 방법론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