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미국은 독립후 오랫동안 정권의 인수인계에 대한 명확한 절차와 법규가 없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물러나는 대통령과 당선자가 취임식 당일 또는 수일전에 백악관에서 차를 들며 "환영한다", "수고했다"는 인사교환으로 대신했다. 당선자는 취임전에 내정한 장관과 참모들을 데리고 백악관에 입성하는 형식이다.

정권의 인수인계에 관한 대통령직 인수법(PTA)이 제정된 것은 1963년 가을이었다. 트루먼에 의해 처음 필요성이 제기됐고 아이젠하워를 거쳐 케네디가 추진한 것이다. 이 법에 의해 그후의 역대 대통령 당선자들은 당선~취임식 사이 두달동안 국비 지원과 정부의 협조하에 인수위원회를 구성해 장관 등 요직 인선과 4년간의 국정 운영의 추진계획표를 마련했다.

인수위의 주요 멤버들은 선거때 핵심참모들로서 닉슨은 봅·홀데만 등 정치광고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카터와 레이건은 주지사때부터의 참모들인 A 헤밀턴 등 조지아사단과 E 미즈 등 캘리포니아사단을 그대로 기용했다.

주로 내각제인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은 정권인수에 관한 법규가 없다. 공무원 조직은 흔들림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인수인계 절차없이 그대로 취임한 후 국정을 담당한다. 이원집정제인 프랑스는 대통령 당선에서 취임까지 10여일에 불과하므로 전통적 관례에 따라 간단한 서류교환과 악수로 끝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의 인수인계가 처음 이뤄진 것은 1988년 13대 노태우 당선자때부터 였다. 13대~2002년 16대까지 국무회의에서 한시적인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설치령'을 제정해 운영해 왔다.

각 인수위는 대체로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문화 등 5~6개 분과위와 전담반을 두고 운영했는데 2002년 노무현 당선자는 이들 외에 60여명의 자문위원을 둔 국민참여센터와 정치개혁연구실 등을 운영했다. 또 각 인수위는 국정추진 과제의 경우 13대는 탈권위주의와 지역감정해소, 14대는 문민개혁, 15대는 경제역할과 100대 과제, 16대는 12대 과제를 설정했다. 그동안 추진위는 국민의 관심속에 거창하고 화려한 실행안들을 대거 정리·건의했지만 역대 정부에서 중점과제로 채택하거나 추진되지 못했다.

대통령의 잦은 변경과 외면, 포퓰리즘 치중 등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추진위의 건의서·백서는 상당부분 휴지화되거나 백지화되기도 했다. 과거 김영삼 당선자의 경우 인수위에서 서두르라고 건의한 금융개혁을 늦춰 임기 말년에 착수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노무현 당선자의 경우 개혁·진보성향의 학자 사회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대거 참여시켜 갖가지 로드맵이라는 이름의 국정계획안을 만들었으나 상당부분이 각종 위원회만을 남발, 양산(量産)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곧 정권인수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으로 있다. 추진위는 경제대통령, 실용정부, 삶의 질의 향상과 나라의 선진화, 작은 정부와 정부조직개편, 사회 각 부문에 대한 개혁과제들을 정책안으로 다듬고 추진 시간표·계획표를 작성하게 될 것 같다.

이 당선자는 역대 인수위의 시행착오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인수위 규모가 거창할 필요가 없다. 효율적 생산적인 기구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친이명박계만이 아닌 각계 전문가를 골고루 망라해야한다. 셋째 각종 선거공약중 선거에 나타난 민심과 요구를 바탕으로 일목요연하게 우선순위를 정해야한다. 넷째 모든 분야의 일을 전부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잡다하고 요란한 계획안이 아니라 중요 추진과제의 실행안을 내는데 역점을 둬야한다. 다섯째 경제회생과 국민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인수위참여 인사는 장차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 중요기관장 인사에 앞서 당선자의 인재의 기용과 발탁의 능력 솜씨를 선보이는 것인만큼 친소(親疎)관계, 학(學), 지(地), 혈연(血緣)을 뛰어넘는 능력과 전문성 위주, 국가발전 차원의 대국적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결국 인수위의 인선과 운영은 장차 이 당선자의 새정부의 인사와 국정운영의 의중·경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국민은 이 당선자의 첫 작품을 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