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70s'(2005), '태풍태양'(2005), '굿바이 솔로'(2006), '여우야 뭐하니'(2006), '강적'(2006). 배우 천정명은 터프한 반항아와 귀여운 연하의 남자친구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이미지를 시차도 거의 없이 순조롭게 안고 왔다.

   이번에는 더없이 착한 청년 역이다. 27일 개봉하는 '헨젤과 그레텔'(감독 임필성ㆍ제작 바른손)은 천정명이 성인으로는 단독 주연을 맡아 아역배우 세 명을 이끌고 가는 영화로, 그가 맡은 은수는 어두운 비밀을 안고 있는 숲 속의 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카리스마보다는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안는 인물이다.

   최근 열린 언론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 소감을 묻자 그는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임필성) 감독님이 많이 외로우셨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공포 또는 스릴러라는 하나의 장르로 딱 꼬집기 어려운 미묘한 작품인 만큼 연출자의 고충이 느껴졌다는 뜻일 것이다.

   "제 역할만 해도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쉽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관객이 은수와 공감할 수 없다면 영화를 이해하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아이들과의 관계를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점점 이해하게 됐죠. 처음 시나리오엔 공포가 강조됐지만 완성된 영화는 동화에 가깝습니다. 장르가 애매하다는 말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잔혹동화'라는 드문 장르에서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고요."
은수 역을 해석하는 것 이상으로 그에게 큰 도전은 은원재, 심은경, 진지희라는 어린 배우 세 명과 동시에 호흡을 맞춰야 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아역 배우들은 성인 배우와 호흡이 전혀 달라요. 반응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요. 세 명 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데 성격이 제각각 달라서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원재는 연기를 하다 잘 안 되면 투덜대지만 계속 노력하는 편이고, 은경이는 남들이 보기엔 잘하고 있는데도 본인 연기가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엉엉 울더군요. 아, 막내 진희는 촬영장 스태프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한테 좋아하는 순위를 매겨 줘요. 제가 막판에 원재를 제치고 1위를 했답니다(웃음)."
그에게 귀여운 '연하남'과 반항아 역 가운데 어떤 연기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사실은 액션영화의 강한 역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태풍태양' 이후에 정재은 감독님과 대화를 해보니 예전 '패션 70s'에서와 같은 (반항아) 역할이 별로 안 어울린다고 하시더군요. 강한 역을 맡으면 긴장을 너무 해서 금세 지치거든요. 반면 '여우야 뭐하니'와 '굿바이 솔로'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헨젤과 그레텔'은 후자에 가까웠어요.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소 모습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어 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곧바로 "'정사'에서 이미숙, 이정재 선배님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는 베드신을 찍어보고 싶고, '파이트 클럽'에서 에드워드 노턴과 브래드 피트처럼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고 답했다. 그만큼 연기하기는 어려워도 관객의 뇌리에 깊이 남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내년 1월 입대를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 군 복무라고 하더라도 한창 쌓고 있는 경력을 모두 뒤로 하고 떠난다는 것에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리 없다.

   "물론 아직 부족하고 더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은데 지금 입대하는 게 아쉽고 불안하죠.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니 씩씩하게 다녀와서 더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도, 드라마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천정명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달변"이라는 말을 건네자 그는 밝게 웃었다.

   "실은 연기 활동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말도 잘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모르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는데 좀 더 활발해졌어요. 사회생활로 얻은 소득인 거죠."